[이 집에 가면] - 부산시청 건너편 영남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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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오기 전 육수에 먼저 반한 집


개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음식점을 소개한 적은 없었다. 맛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달이라는 기간은 맛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짧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집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고향이 함흥인 양순희(68)씨는 사하구에서 2대째 이어온 함흥냉면집을 수십 년간 했었다. 가게 문을 닫은 뒤에는 몇 년간 딸이 남포동에서 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아미치'의 일을 도왔다. 기자는 언젠가 양씨가 만든 온면을 맛본 적이 있었다. 그만 '이 집에 사위로 들어가면 매일 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아주 잠깐이었고, 그렇게 맛있었다는 이야기일뿐이다. 양씨가 시청 건너편에 낸 '영남면옥'(원래는 '영남밀면'이라 했는데 사람들이 죄다 냉면만 찾아 '급수정')을 찾아갔다.

일단 따끈한 육수부터 맛을 보았다. 진하고 고소하다. 닭발이니 닭대가리니 이런 잡것을 쓰지 않고 한우 소뼈를 5시간 삶아 고아냈단다. 말이 필요 없다. 넉 잔의 육수를 마셨더니 배가 부르다. 함흥과 평양, 어디가 비빔이고 어디가 물인지 항상 헷갈렸다. 소설가 성석제씨가 '이야기 박물지'에서 구별법을 알려주었다. '대동강이 있으니 평양냉면은 물냉면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자신 있게 함흥냉면을 시켰다. 직접 반죽해 삶은 냉면 면빨은 졸깃한 맛이 제대로이다. 신고배, 가오리회, 향 좋은 참기름….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개업 초기에는 입에서 불이 날 정도로 맛이 매웠다. 어떤 손님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 걸 보고난 뒤 덜 맵게도 해준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다. 냉면을 먹고 밀면 한 그릇을 더 시켰다. 밀면도 시원해서 맛있다. 냉면과 함께 먹는 육수 때문에 밀면이 다소 밀릴 뿐이다. 옛날에 맛보던 이북식 함흥냉면을 찾는 분들이 좋아할 만한 집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양씨는 "집에서도 못먹는 음식이니 많이 먹고 가라. 이 나이에 식당 차려 무슨 떼돈 벌겠나? 돈벌이가 좀 되면 불쌍한 아프리카 난민들 먹고살게 도와주고 싶다. 그게 목표다"고 말한다. 양씨는 지금도 아흔이 넘은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어려서부터 부모님 어깨 너머로 배우던 양씨의 큰아들 이효수(42)씨가 양씨와 함께 3대째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날이 좀 선선해지면 이북 사람들에게 잔칫날에 빠져서는 안되는 온면과 가자미 식해를 시작한단다. 날씨야 빨리 선선해져라! 냉면 5천원, 밀면 3천500원. 영업 시간은 오전 11시30분∼오후 9시. 시청 맞은편 육교 옆 새약국 골목. 051-866-3626. 박종호 기자 n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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