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친구 노무현을 보내며-김정길/전 대한체육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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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분과 눈물로 한 주일을 보내고 보니 이제 당신을 영영 하늘로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 왔소. 내 늦둥이 놈을 위해 당신이 써 준 "기범아! 꿈이 힘이다."라는 글이 아직도 아들놈 책상 위에 놓여 있는데 정녕 당신의 꿈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부엉이 바위 밖에 없더란 말이오.

미안하고 원통하오. 당신이 힘들어 할 때, 당신과 여사님께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보고자 몇 번이나 편지를 썼다가 다시 쓰곤 했었다오. 멀리서나마 두 분을 믿고 후원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차마 그 편지를 부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무릎이 풀려 집사람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오.

가장 위대하였던 평민
당신이 꿈꾸던 세상
사람들 가슴 속에 피어나

친구여, 당신은 참 나쁜 사람이오. 3당합당을 거부하고 김영삼 총재를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향 부산에서 우리 얼마나 많은 멸시와 야유를 받았는지 기억하오? 지역주의를 넘어보겠다고 했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깨지고 또 깨지면서도, 같은 꿈을 꾸는 동지, 같이 행동하는 친구가 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는데, 아직 그 꿈을 완전히 이루지도 못한 채 이렇게 먼저 떠나가 버리다니…, 당신은 참으로 야속하고도 나쁜 친구요.

친구여, 당신은 참 멋진 남자요. 당신은 같은 남자인 내가 보더라도 부러울 만큼 결단력이 있고 용맹스러우며 또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소. 청문회장에서의 그 포효, 3당합당이 야합이라 외치며 반칙이 허용되는 사회를 후세에 물려줄 수 없다고 끝내 정치적 타협을 불허하고 싸우던 기개를 영원히 잊지 못하오. 3당합당 거부 후 쓰린 마음을 소주잔으로 달래며 "나는 국회의원 떨어져도 변호사라도 해서 먹고살 수 있지만 당신은 뭘 믿고 안 따라 갔소?"하며 나와 나의 가족을 걱정해 주던 그 따뜻한 마음, 지친 어깨를 기대고 함께 이야기하며 울던 그 시간들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이오. 나는 당신이 겉으론 강한 것 같지만 속으론 여린 사람인줄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오.

친구여, 당신은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이오. 누군가 말하기를 "세상에 올 때는 홀로 울고 오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사람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는데, 당신을 위해 울어주는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당신이 참 행복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였던 평민, 거듭된 실패를 통해 가장 큰 성공을 이루었던 비주류였던 당신, 가장 높은 곳에 올랐지만 늘 가장 낮은 곳으로 눈높이를 맞추었던 친구 같은 대통령이었던 당신. 당신이 꿈꾸었던 그 꿈들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환한 웃음과 함께, 촛불과 함께 피어나는 것을 요 며칠 사이 나는 지켜보았소. 그래서 비로소 나도 내 오랜 친구를 편히 보내주기로 마음먹게 되었소.

편히 가시오, 내 친구여. 이제 모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훌훌 털고 떠나소서, 내 평생의 동지여.

당신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 원칙이 반칙보다 우선하는 세상,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당신의 오랜 친구들, 그리고 이제 막 당신의 새로운 친구가 되기 시작한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몫일 터이니….

노무현! 당신이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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