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결혼이민여성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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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주 교육팀장

10여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A씨는 지난해말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큰 딸이 국어과목에서 난생처음 92점을 받아오자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펑펑 쏟았다. 70점대를 오가던 딸아이의 성적이 지난해 여름부터 6개월동안 대학생 멘토로부터 집중학습을 받은 뒤 몰라보게 향상됐던 것이다.

학교수업을 제대로 못따라간 데 대한 스트레스로 집에 오면 숙제는 안하고 짜증부터 내던 딸아이의 성격도 대학생 언니를 만나고부터 한결 밝아지고 부드러워졌다.

두 살 아래 아들도 같은 과정을 밟고선 지난해 11월 치러진 다문화가정 자녀 한글 백일장에서 2등상인 우수상을 수상했다. 부상으로 시집과 상품권을 들고온 날 A씨는 한글도 비뚤비뚤 써온 아들의 변화를 좀체 실감하기 어려웠다.

A씨 가족의 예는 지난 2007년 교육과학기술부 시범사업으로 전국에서 첫 도입돼 지난해 부산시교육청의 예산지원으로 본격 시행된 '다문화가정 자녀 학력신장 멘토링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엿보게 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자 부산시교육청은 올 해 수강 학생수를 지난해 100명 보다 배이상 많은 250명으로 늘렸다. 교육기간도 지난해 6개월에서 올 해는 8개월로 확대했다.

지난달 26일 부산대 10·16 기념관에서는 '2009학년도 다문화 학생 학력신장 및 문화체험 프로그램 설명회'가 대학생 멘토 250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들 대학생 멘토들은 앞으로 11월말까지 8개월동안 매주 두 차례 다문화 학생의 집을 직접 방문해 국어 수학 사회 등 교과목을 가르치며 실력향상을 돕게 될 것이다.

또 매달 한 차례 멘티 학생들과 짝이 돼 한국요리와 도자기 굽기, 체육활동, 영화보기 등 체험활동을 하며 자아정체성 확립은 물론 정서적 유대감을 고취시키는 역할도 맡을 것이다.

행사를 주관한 부산대 평생교육원 부산다문화교육센터측은 월 20만원의 강사료가 주어지는 이 프로그램에 부산대 부산교육대 신라대 등 3개대 재학생 500명 이상이 몰려 2대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고 했다. 예비교원에 필수인 봉사점수를 따기 위해 사범대 교육대생이 많았지만 일반 학생들도 절반 이상 참가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리사회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센터측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다문화가정 자녀라면 가난하고 왕따를 당하는 등 어두운 면만 떠올랐는데 직접 가르쳐보니 잘 따라오고 성격도 쾌활해 오히려 스스로의 편견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며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부산지역 다문화가정 초·중·고 학생수가 최근 3년간 매년 50%이상 폭증하면서 올 해는 1천2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우선 수혜대상을 늘리기 위한 예산확보가 급선무다.

여기다 부산시와 법무부 보건복지가족부 여성부 등 정부 각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다문화 자녀 멘토링제에만 관심을 갖는 현상을 분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부산시는 이주부모 멘토링제를, 법무부는 각종 국내법규 숙지 교육을, 노동부와 여성부는 직업 및 정착교육을 시키는 등 각 부처의 실정에 맞는 지원책을 마련토록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중구난방으로 진행되는 자녀 멘토링제는 시교육청으로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도 개선 과제다.

한 결혼이민여성은 결혼 후 한참이 지나서야 주변에 "한국법에서는 시어머니나 남편이 '애들은 놔두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면 실제로 그래야하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그들의 말못할 고민과 무지를 해소해주고 그들 자녀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보살펴줘야하는 것은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자 의무다. chan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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