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빌리 브란트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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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진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신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공언하면서 동북아와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남북 분열은 우리 시대의 숙명인 것 같다. 천 오백년 전 신라와 백제, 고구려가 이랬을까. 언제까지 분열의 속박에 우리 국운의 기상이 발목을 잡혀야 할 것인가.

남북 관계는 무장 공비의 공포와 국지적인 총격전 시대를 거쳤지만 정상회담과 경제협력 시대로 발전되었다. 오랜 소모적인 대결을 겪으면서 우리는 뉴스에 겁을 먹기도 했지만 이제는 남북 관계를 자기 당에 유리하게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수까지 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이 정부 들어서서 남북 관계가 다시 악화되었다.우리 생애에 남북 분열로 인한 폐해를 얼마나 더 겪어야 하는지, 쓸데없는 낭비가 얼마나 더 계속되어야 하는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싸늘한 시선을 돌려놓은 참회

1969년 독일 수상에 선출된 빌리 브란트(1913~1992)는 2차대전 피해 국가들을 방문하여 독일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분단된 독일 통일의 초석을 다진 뛰어난 수상으로 평가 받는다. 당시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에 대한 세계의 시선은 싸늘했다. 하지만 브란트는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유럽 통합'과 '독일 통합'에 기초를 쌓았다.

1970년 브란트는 먼저 폴란드를 방문해서 유대인 학살 기념비를 찾아 나치의 만행에 대해 사죄했다. 헌화 도중 브란트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참회의 묵념을 올렸다. 각본 없는 수상의 행동에 외교관들은 당황했지만 세계는 수상이 보여준 진심어린 사죄의 눈물과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나치시대 때 브란트는 오히려 반나치 투쟁을 했었고 나치를 피해 망명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다. 브란트는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73년 브란트는 서독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다. 당시 독일에 대한 유대인의 격앙된 감정으로 수상의 방문 자체가 껄끄러웠지만 브란트는 솔직하고도 정중하게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가했던 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청했다. 이스라엘 수상은 멋진 말로 화답했는데 이 말이 유명한 말이 되었다.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방문이 독일과 이스라엘의 화해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어 브란트는 분단된 독일의 통합을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브란트의 정책은 '동방 정책'이었다. 동·서독이 냉전을 버리고 화해 협력으로 돌아서게 한 것이다. 당시 독일의 보수적인 사람들과 정적들은 브란트의 정책을 맹비난하였다. 브란트에 대한 인신 공격에서부터 좌파 공산주의자, 동독 퍼주기 등 온갖 비난이 난무했다.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브란트는 흔들리지 않고 동·서독의 통합을 추진해나갔다. 그리하여 브란트 시대에 동·서독은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고 이산가족 방문, 우편과 통신 교류, 무역을 통한 상호 화해와 발전을 이루었다. 1970년 브란트는 독일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역사적인 동·서독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상호간에 경제와 여행,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를 활성화시켰다. 이후 독일은 1989년에 통일을 이루었으니 브란트의 용기가 밑거름이 되었다. 정치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독일 젊은이들도 브란트 만큼은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로 생각하고 있다.

보다 절실한 통합의 리더십

북한의 미사일 발사라는 도전 앞에 우리의 처지를 생각한다. 세계 역사에서 반도 국가 민족들은 진취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가 그랬고 로마가 그랬다. 우리 민족도 진취적인 기상을 펼 좋은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일찍이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들이 대양 시대를 열고 세계를 경영하여 시야를 넓히고 국력을 키웠다. 장보고처럼 우리도 밖으로 나갔다면 우리의 상황도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같은 언어와 문화라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고 능력은 뛰어나다. 글로벌 시대에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이 많다. 진작부터 세계로 뻗어나가 그 기상을 폈어야 했을 것을, 역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쇄국으로 돌아서 버렸다. 쇄국으로 민족의 기상이 쪼그라들었고 우리끼리 다투는 옹졸한 우물이 되어 버렸다.

통합의 리더십이 더욱 절실한 때다. 나와 너, 우리 지역과 너의 지역이 화해하고 마침내 남과 북이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하루빨리 민족이 힘을 합쳐 중국과 일본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세계 전체의 통합에 기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빌리 브란트의 '통합의 리더십'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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