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그 후 1년]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첫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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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공과, 시간 지나면 제대로 평가 받을 것"

"지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두고 '좌절한 이상주의자' 정도로 여기는 것 같은데, 정책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나중엔 앞날을 내다 본 '성공한 이상주의자'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종 참여정부의 공과(功過)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노 전 대통령 '성공한 이상주의자' 인정 받을 터
지난 10년간 공들인 남북관계 부정은 위험한 일"


문 전 실장은 "개혁을 하면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국민들과 소통하고 설득했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 소홀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 '반성문'을 쓰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참여정부의 업적은 시간이 갈수록 평가받을 것"이라는 부분은 재차 강조했다.

문 전 실장은 지난해 2월 노 전 대통령 퇴임과 동시에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 깊은 골짜기에 정착했다. 현재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부산'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참여정부 5년을 놓고 보수진영에선 '잃어버린 5년'이라 한다. 진보쪽에서도 평가가 그리 좋지 않은데.

△참여정부는 시장주의 경제에 근간을 두면서도 분배, 복지에 신경 쓴 중도성향 정부였다. 중도를 하다 보면 좌우 양쪽으로부터 운명적으로 비판을 받게 마련이다. '분배주의 정부'라는 비난과 '신자유주의'라는 평가가 교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판이 올바르지도 정당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제대로 평가 받으리라 생각한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의 패배를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이라 규정하는 이들이 많은데.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좀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더라면 여당에 도움됐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패인은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창당을 통해 가까스로 만들어냈던 전국정당의 면모를 대선을 앞두고 잃어버린 때문이다. 당시 여당이 호남 중심의 지역기반 정당으로 회귀하고 그 바람에 영남권의 지지를 상실한 것이 문제였다.

-귀향 1년을 맞은 노 전 대통령의 근황은 어떤가. 은둔이 언제까지 갈 것으로 보나.

△노 전 대통령은 귀향 후 생활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다만 근래 참여정부 인사들이 연루된 이런 저런 사건들이 발생하고 형님 건평씨가 구속된 것에 참담해 하고 있다. 당분간은 대외활동은 자제하고 독서와 '민주주의 2.0', '사람사는 세상' 홈페이지를 통해 건전한 인터넷 토론문화 형성에 주력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직설적이고 돌출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자주 일으켰다. '권위주의 청산'에 기여했지만 대통령의 권위를 스스로 훼손시켰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참여정부가 대통령 문화와 권력운용에서 권위주의적인 요소를 씻어낸 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위는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실패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던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거대언론들이 집요하게 대통령의 특정 언사만 끄집어내 증폭시킨 측면이 크다.

-경제위기의 징후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참여정부 5년과 이명박 정부 1년을 비교하자면.

△마이너스 성장이 예견되는 지금이야 말로 참여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가 있어야 할 때라고 본다. 5년간 연 평균 성장률 4.3%로 OECD국가 중 최상이었다. '분배에 치중해 성장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 보면 대견한 성과가 아니냐. 복지는 쓸데없는 비용이 아니라 사회적 투자다. 이런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일관되게 추구한 것이 참여정부인데 일방적으로 좌파라 매도당했다.

-남북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상호주의를 앞세우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관계의 발전들은 하나하나가 많은 시간과 대가를 치르면서 성취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남북관계는 한걸음 나아가는데 대단히 힘들고 공도 많이 들지만 까먹는 것은 순식간이란 것을 알아야 하다.

-이명박 정부가 '실패한 정권'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보나.

△정부 정책은 정권이 달라져도 크게 봐서는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의 경우 교육정책은 김영삼 정부, 대북정책은 노태우 정부 시절 남북기본합의서가 기본이 됐다. 앞선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평가하며 정책을 깡그리 폐기하려 한다면 그 정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청와대에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4년 3월12일 대통령 탄핵 이후 있었던 탄핵반대 촛불집회 때다. 개인적으로 갈등이 많았던 때는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추진 때다. 청와대 안에서도 찬반 격론이 치열했다. 결국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당시 반대론자들의 주장 덕택에 좋은 조건에서 국익을 최대한 지킬 수 있었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각각 평가하자면.

△노 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부터 고통받거나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특별했다. 그런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투철하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 만큼 초심을 지켜나간 정치인이 드물다. 그것이 그를 대통령이 되게 만들었다. 대통령으로선 '실패한 이상주의자'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결국 제대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박진홍 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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