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가면] 부산 동래구 명륜1동 '진수사'
밑반찬 대신 나물·채소 곁들인 회로 단도직입
1990년대 벽두, 한 청년은 경남 양산에서 누님이 하는 중국집에서 음식을 배우고 있었다. 하루는 유명한 일식집에 자장면 배달을 갔는데 요리사의 하얀 요리복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참으로 멋있었다. 그는 "일식을 배우자"고 결심을 했다. 그러고는 1993년 이후 10년간 동래의 일식집 두 곳에서 기술을 익힌 뒤 2003년 자신의 일식집을 열었다.
부산 동래구 명륜1동의 일식집 '진수사'의 박명호(38·사진) 사장. 그는 17년간 동래에서만 요리를 하고 있는 '동래 토박이'(?)이며, '진수사'는 동래에서 알아주는 일식집이다.
항간에 들리는 '진수사'의 특징은 곁음식 또는 밑반찬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것이 회를 먹기 전에 나오는 꽁치다. 등푸른생선인 꽁치는 맛이 강하다. 그래서 미식가들은 "회를 먹기 전에 나오는 꽁치는 음식을 내는 순서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는다. 꽁치의 강한 맛에 점령된 혀는 회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수사는 꽁치뿐 아니라 다른 밑반찬을 거의 내지 않는다. 본론인 요리(회 초밥 등)로 단도직입하고 있다.
단도직입하면서 박 사장의 스타일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회를 낼 적에 아주 특이한 채소들을 곁들인다. 회와 함께 나온 생 두릅과 살짝 데친 방풍 머위 취나물이 벌써 봄을 예고하고 있었다. 앞선 계절 감각이 접시 위를 달리고 있다. 역시 고래고기 접시에 함께 얹혀 나온 부추 초무침도 같은 의도의 것이었다.
일식에 한국식의 나물과 채소를 곁들이는 방식이 박 사장의 요리 스타일이다. 그는 산초와 나물이 많이 나는 경남 산청 출신이라고 한다. 어릴 때 알게 모르게 먹었던 나물과 야채에 대한 그리운 맛의 기억이 그의 요리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음식은 요리하는 주인을 닮는다" "음식을 새롭게 결합시키는 것을 선호한다"는 그의 말 그대로였다.
그건 그렇고 이 집에는 어떤 메뉴가 있는가. 1만~10만원의 갖가지 요리가 다 있다. 각종 회와 계절 별미를 포함한 식사가 간단치 않게 나오는 점심 특선은 2만5천원, 계절 별미로 그날 맛본 참가자미쑥국은 1만5천원. 1인 3만원의 진수사 스페셜은 배가 부를 정도라고 한다. 그날 맛본 달콤한 광어살, 깨소금이 쏟아지는 듯한 도미 회, 참치 뱃살이 혀의 호사를 누리게 했다. 스시의 맛도 기가 찼다는 말만 하겠다.
회의 종류는 그날그날 따라 달라지는 게 있다. 갈치 회가 오르는 날도 있다. 원래 일식은 손님 따라, 그날 재료 따라 변하는 틀 속의 틀 없는 요리라고 한다. 그날의 재료들을 그는 매일 아침 6시께 일어나 부전시장 자갈치시장 기장시장 용원시장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포항 죽도시장까지 가서 구해온다고 한다. 싱싱하다는 말이다. 저녁은 예약을 해야 한다. 오전 11시~오후 10시 영업. 수안교차로 인근 한국투자증권 옆 옛 청기와예식장 1층. 주차장 구비. 051-557-0676. 글·사진=최학림 기자 th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