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의 부산미학 산책] 11. 무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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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춤추는 춤의 고장

부산은 누가 뭐래도 춤의 고장이다. '소리는 호남, 춤은 영남'이라거나 '서도 소리, 전라도 창, 경상도 춤'이라는 말이 예부터 공연히 전해 오는 게 아니다. 춤 평론가인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는 "춤 인구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 부산이었고, 시도 때도 없이 춤을 즐기던 곳도 부산"이라며 "배냇춤꾼이 많고, 손 한 번 들어 몸 한 번 움찔하여 춤이 되고 마는 곳 또한 부산"이라고 강조한다. 부산이 춤의 고장이라 불리게 된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부산은 들놀음, 곧 야류(野遊)의 고장이었다. 우리나라 가면극은 지역마다 명칭이 달랐다. 황해도에서는 탈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산대놀이, 경북에서는 별신굿놀이라 했고, 낙동강 서쪽인 경남에서는 오광대, 낙동강 동쪽인 부산에서는 들놀음이라 불렀다. 오광대와는 달리 농악대가 악사 노릇을 한 들놀음은 예인집단의 공연물이라기보다는 대동놀이라는 기층 민중성을 띠었다. 들놀음은 동래, 수영, 부산진에서 공연되었는데, 현재는 동래와 수영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흔히 야류에서 추는 춤을 총칭하여 덧뵈기춤이라 한다. 부산 춤의 향토적 특성은 이 춤에서 오롯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지신을 진압하듯 크게 뛰어 땅을 내리밟는 배김사위에서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잡것을 베어 없애는 덧뵈기춤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한다. 폭이 크고 역동적이며 자유분방한 이 춤은 화통한 부산 사람들의 성정을 꼭 빼닮았다. 덧뵈기춤은 부산의 들놀음과 경남의 오광대를 구성하는 주된 춤 가락이면서 한량춤, 일춤, 놀이춤 등에 두루 걸쳐 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이후 서양문명 수용의 첨단도시였던 부산은 무용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1920년대에 부산에는 일본에서 유입된 신흥무용, 교육무용, 아동무용이 판을 쳤고, 부산은 또한 이시이 바쿠를 비롯한 유명 무용가의 주요 공연지이기도 했다. 6·25 전쟁 때는 부산이 한국무용의 중심지가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매방 이춘우 황무봉 김진홍 등이 부산을 지키며 부산무용의 전성시대를 열어나갔다. 한국 무용평론의 1세대로 불리는 춤 평론가 강이문(전 신라대 교수)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활달한 부산 춤의 정신은 세계에서 유일한 해변 무용축제로 불리는 부산국제무용제(BIDF·사진)에 잘 녹아 있다. 2005년 부산국제해변무용제로 막을 올린 BIDF는 광안리에 이어 해운대에서 바다를 무대로 춤 작품을 올림으로써 춤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최근 부산지역 대학의 무용학과 폐과 움직임은 이런 부산 춤의 전통에 비춰 볼 때 유감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논설위원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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