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톡] 아이의 문화 감수성에 놀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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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작년 다대포 미술 행사에서 본 작품이 왜 여기에 와 있어요?"

지난 주말 놀러 가자는 아이의 등쌀에 못 이겨 해운대 영화의전당을 들렀다. 아이는 야외극장에서 한참을 논 후 출출하다며 먹으러 가자고 조른다. 영화의전당 맞은편 KNN방송국 방향으로 길을 건너는데 아이가 뭔가를 발견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취재를 위해 지난 몇 달간 여러 차례 이곳을 지나다녔는데 정작 기자인 엄마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아이는 "보석나무가 자라는 배가 지난해 다대포 미술 행사에서 해수욕장 중간에 있었다"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가을 다대포에서 열린 '2015 바다미술제'에서 본 작품과 아주 비슷한 것 같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부산비엔날레 사무국에 연락해 KNN방송국에 설치된 작품이 지난해 바다미술제에 선보인 김정민 작가의 작품과 비슷하다고 물으니 그 작품이 맞단다. 바다미술제가 끝난 후 KNN방송국 건물로 이동해 설치되었단다. 평소 아이가 그림 그리는 것도 싫어해 미술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반년 전 봤던 미술 작품을 기억하는 아이가 신기해 보일 정도였다.

사실 요즘 들어 아이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어른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다. 몇 주 전 아이를 데리고 부산시립미술관을 갔다. 엄마가 여러 번 기사로 소개한 앤디 워홀 전시를 보여 주기 위해서다. 기사를 쓰기 위해 이미 앤디 워홀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엄마는 선생님의 자세로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앤디 워홀이 어떤 화가이고 어떤 점이 훌륭한지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말을 듣지도 않고 전시장 안으로 쑥 들어간다. 그리고 망아지처럼 전시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전시장 입구부터 시계 방향으로 걸어가며 작품을 봐야 한다고 그게 바른 순서라고 말해도 아이는 전시장 전체를 돌아다니며 자기가 흥미 있는 작품만을 본다.

결국, 작품을 설명하는 것도, 관람 방향을 수정하는 것도 포기했다. 몇 개의 전시실을 맘대로 돌아다니더니 "이 사람은 다 잘 그리네. 물감으로도 그리고 펜으로도 그려. 멋진 그림도 그리고 만화도 그리네. 나는 펜으로 그린 만화가 좋아"라고 딱 부러진 감상평까지 내놓는다.

헐! 아이는 앤디 워홀의 매력과 전시 특징을 자기 언어로 정확하게 짚어 냈다. 예술은 설명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이의 문화 감수성은 나도 모르는 사이 쑥쑥 자라고 있는 모양이다. 부지런히 전시장을 데리고 다녀야겠다.

김효정 기자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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