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의 부산미학 산책] 5. 저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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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도시, 삐딱한 사람, 삐딱한 문화

경상도 중의 경상도는?

'한국학의 거장' 김열규는 "부산"이라고 잘라 말한다. 시끄러운 부산말을 보면 안단다. 음성학적으로 여섯 가지나 이유가 있다. 발성이 크다, 억양의 강도가 높다, 동음이의어를 음의 고저로 판단한다, 된소리화 현상이 강하다, 발음과 문자의 경제 원칙이 뚜렷하다, '죽인다/직인다' 같은 이 모음 역행동화 현상이 나타난다. 문화 역사적으로도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여서 파도 소리를 이겨야 했고, 둘째는 일제강점기 부산이 도시화할 무렵 생활 조건이 너무 각박했으며, 세 번째는 부산말이 범경상도적인 짬뽕인 데다 함경도 피란민의 쇳소리까지 끼어들었기 때문이란다.

부산의 야성은 질곡의 근현대사 탓만은 아니다. 거친 기질은 삼한시대 동래 부근에 있었다는 거칠산국(居漆山國)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칠산국은 부산의 중심부에 있는 황령산(荒嶺山)을 떠올리게 한다. 한자 황(荒)과 영(嶺)은 모두 우리말 '거칠다'와 의미가 통한다. 향토사학자들은 황령산이 처음에는 '거친 메'로 불리다 우리말과 소리가 같은 거칠산(居漆山)으로 바뀌었을 거로 추정한다. 부산은 거친 산과 폭풍우 치는 바다가 있는 변방이었고, 그곳 부산 사람들은 신라와 가야, 어느 쪽에도 예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버틸 만큼 사납고 용맹했다.

부산은 오랜 저항의 역사를 육화해 왔다. 왜구의 침탈에 저항하던 부산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헌신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박재혁, 박차정, 안희제, 오택, 윤현진, 이흥룡, 임용길, 장건상, 정인찬, 최천택, 한흥교 등 독립투사들의 이름을 들라면 한참이나 걸린다. 반체제 가면극인 동래야류와 수영야류의 고장인 부산은 민중들의 기층문화를 바탕으로 야도(野都)로서의 명성을 쌓아 왔다.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항쟁, 1987년 6월항쟁을 부산을 빼고 말하기는 어렵다.

비제도권의 비주류 문화, 하위문화 혹은 인디 문화가 부산에서 활짝 꽃피운 것도 부산 사람들의 이런 저항적인 기질의 여파다. 인디 밴드, 록 밴드, 독립영화, 인디 만화, 독립애니메이션 등 저항적인 청년문화와 독립문화는 부산에서 움터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부산은 또한 '비보이(B-boy)의 성지'이고, 용두산공원은 '한국 힙합의 발상지'이기도 했다. 2000년 출범한 부산국제록페스티벌(사진), 2008년 막 오른 부산국제힙합페스티벌도 그 나름의 출생 배경이 있는 것이다. 부산의 화통미학은 혼종성, 역동성에 이어 세 번째 미적 특성으로 저항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논설위원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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