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대문·손목 밴드 英 난민 낙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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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터키를 거쳐 그리스 치오스 섬 인근 무인도에 도착한 시리아 여인이 자녀들과 함께 철제 박스에 들어가 비를 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영국에서 난민 '낙인 찍기'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난민들을 빨간색 대문 집에만 거주시킨 데 이어 손목 밴드를 착용한 난민에게만 식량을 제공해서다.

영국 가디언과 텔레그래프는 25일(현지 시각) 지난해부터 웨일스 수도 카디프에서 밝은색 손목 밴드를 차고 다니는 난민 신청자들에게만 음식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손목 밴드 착용은 사실상 강제적이다. 난민으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직업을 얻거나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데 음식을 먹으려면 손목 밴드를 찰 수밖에 없어서다. 

난민 거주·급식 대상 표시
영국판 아파르트헤이트
굴욕·인종차별 비판 일어


손목 밴드 착용은 난민에게 굴욕을 안기고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많다. 지난해 11월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한 달간 카디프 난민 신청자 보호소에 있었던 에릭 응갈레 씨는 "손목 밴드 없이는 음식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응갈레 씨는 손목 밴드를 차고 거리를 걷다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수단 출신 인권운동가로 응갈레 씨와 같은 곳에서 3개월 동안 지냈던 모그다드 아브딘 씨는 "손목 밴드는 명백한 차별이며 우리가 2등 인간이라는 기분을 들게 한다"고 말했다. 난민 지원 단체인 트리니티센터 측은 "강제 손목 밴드 착용은 이미 적대적인 환경에 처한 난민들을 더 눈에 띄게 해 낙인을 찍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이 문제를 조사 중인 변호사 애덤 헌트 씨는 "손목 밴드를 착용하지 않으면 난민이 굶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며 "난민 신청자들에게 굴욕감을 주지 않고 음식을 제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조치는 영국 내무부와 계약한 클리어스프링스 레디홈스라는 업체가 시행했다. 난민들과 난민 지원 단체는 해당 업체에 손목 밴드 착용을 항의했지만, 무시당했다. 업체 측은 "난민 신청자 수가 급증해 지난해 5월부터 식량 지급 규정을 엄격하게 시행하면서 손목 밴드를 착용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 대해 영국 내무부는 아직 어떤 견해도 내놓고 있지 않다.

영국 미들즈브러에서는 빨간 문이 있는 건물에만 난민을 수용해 영국판 아파르트헤이트(인종 차별 정책)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최근 일간 더타임스가 미들즈브러 빈민촌 2곳에서 부동산회사 조마스트가 소유한 빨간색 문의 건물 66곳을 취재한 결과 62곳에 22개 국적의 난민 신청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마스트는 영국 내무부와 계약하고 난민을 수용한 국제 보안회사 G4S의 하도급업체다.

조마스트 건물에 수용된 난민들은 "모두가 빨간 문이 난민 신청자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이것은 우리는 당신과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인종주의자들은 이들 건물에 개의 배설물을 바르거나 창문에 계란과 돌을 던지고 영국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상징을 대문에 새기기도 했다. 난민 신청자들은 문을 다른 색으로 바꾸기도 했지만, 조마스트 직원의 지적으로 다시 빨간색으로 바꿔야 했다.

이를 놓고 한 전직 지방의원은 "빨간 대문은 과거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달도록 한 노란 별에 비견된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G4S 측은 "빨간색 문을 다양한 색으로 다시 칠하겠다"고 밝혔다.

김종균 기자 kjg11@busan.com·일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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