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영웅 쿤타르 폭사… '36년 만의 보복'
1979년 4월 22일 자정. 레바논 남부 티레를 출발한 작은 소형 고무보트 한 정이 이스라엘 해안 마을 나하리야에 도착했다.
이 배에 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F)의 침투조 4명 가운데는 17세에 불과한 레바논 출신 사미르 쿤타르도 있었다. 이들은 이 마을에 살던 대니 하란(31)의 집을 급습, 하란과 그의 4살짜리 딸을 납치했다.
19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
1979년 이스라엘 가족 살해
2008년 포로 교환으로 풀려나
헤즈볼라 간부로 시리아서 활동
당시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점령에 밀려난 팔레스타인 난민과 무장조직의 피신처였다.
하란 부녀를 납치한 쿤타르 일당은 이스라엘 군경과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하란 부녀는 모두 사망하고 쿤타르는 체포됐다.
이스라엘 재판 기록에 따르면 인질을 데리고 도주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쿤타르의 침투조는 하란을 총으로 살해하고 딸의 머리를 소총 개머리판으로 때려죽였다.
또 이들이 집을 급습하자 하란의 아내는 두 살배기 딸과 함께 다락방으로 몸을 숨겼는데, 자꾸 보채는 어린 딸의 입을 손으로 막는 바람에 딸은 질식사하고 말았다.
쿤타르는 살인 혐의로 종신형을 받고 수감됐고, 이 10대 소년은 일약 반 이스라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쿤타르는 2008년 7월 레바논 무장조직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포로교환으로 수감된 지 29년 만에 풀려났다.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한 헤즈볼라가 쿤타르의 석방을 요구해 포로교환이 성사됐다.
그의 귀환에 레바논은 축제 분위기였지만 이스라엘엔 '패배'로 기록됐다. 알자지라 방송이 그의 환영 파티를 보도했다가 이스라엘 정부의 강한 항의를 받고 이례적으로 사과했을 만큼 이스라엘로선 앙숙 헤즈볼라에 쿤타르를 내준 협상은 분노와 치욕으로 남았다.
이후 헤즈볼라 고위 간부로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그의 소식이 20일(현지 시간) 다시 들려왔다.
헤즈볼라 계열의 레바논 알마나르방송은 "우리의 전사인 사미르 쿤타르가 19일 밤 시리아 다마스쿠스 교외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에 숨졌다"며 "이스라엘에 협조한 시리아 반군 조직이 시리아 내 쿤타르의 소재를 밀고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20일 이 공습에 대해 확인하지 않았지만 "쿤타르와 같은 자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라고 환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