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90 이 노래 이 명반] 17. 이선희 4집과 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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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에게' 그녀를 빼고 80년대 가요를 이야기 말라

80년대 가요계의 판도를 일시에 바꿔버린 이선희. 페이퍼레코드 제공

1984년 전반기 가요계 최고의 히로인은 단연 최혜영이었다. 그녀의 데뷔앨범 수록곡 '그것은 인생'은 당시 최고의 인기곡이었고 후속곡 '물같은 사랑'의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대로라면 연말 각종 신인상은 말 그대로 떼놓은 당상이었다.

바로 그때 일시에 판도를 뒤바꿔버린 문제가 있는그 사람이 홀연히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이·선·희였다. 1984년 여름, 인천전문대 학생이던 이선희는 같은 학교 임성균과 함께 '4막5장'이라는 혼성 듀엣으로 강변가요제에 참가해 대상을 거머쥐었다. 수상곡은 'J에게'였다. 그날을 기점으로 가요계의 인기 판도는 격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강변가요제 대상 후 솔로로 본격 활동
84년 최고 히트 가요…각종 상 휩쓸어
송시현과 만나 4·5집 작업 음악도 변화
5집엔 '오월의 햇살' 등 사회성 짙은 곡도

■가요계 판도 바꾼 '4막 5장'의 등장


임성균의 입대로 인해 솔로로 본격 활동에 나선 이선희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J에게'는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절대적인 인기를 얻으며 1984년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고, 연말 KBS 가요대상과 MBC 10대 가수가요제의 신인상 역시 당연히 이선희의 차지였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당시 나는 최혜영과 '그것은 인생'을 좋아했다. 이선희와 'J에게'의 등장은 최소한 그녀에게는 불운이었다. 'J에게'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얼마 후 'J그대는'이라는 유사품이 나오기도 했다. (두 곡 모두 이세건이 작사, 작곡한 노래다)

■1985년, 정식 데뷔와 히트 퍼레이드

'J에게' 단 한 곡으로 1984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어버린 이선희의 정규 1집은 이듬해인 1985년 초에 나왔다. 여기서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 기도'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인기가 'J에게'의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입증했다. 그 해가 가기 전에 다시 내놓은 2집에서는 '갈바람', '괜찮아',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등의 히트곡이 계속해서 나왔고 1986년 나온 3집에서도 '알고 싶어요', '어둠은 걷히고', '영'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선희 + 송시현, 발전의 증명서 4집, 그리고 5집

1988년 2월에 나온 4집은 이선희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여기서부터 그녀의 음악이 의미 있는 변곡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변화의 실마리를 설명하는 이름 하나가 있다. 바로 송시현이다.

1987년 '꿈결같은 세상'의 히트로 이름을 알린 싱어송라이터 송시현은 이때부터 이선희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4집에서 LP의 A면 타이틀곡인 '사랑이 지는 이 자리'와 B면 타이틀곡 '나 항상 그대를'를 포함해 모두 4곡이 그의 작품이다. 둘의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송시현 특유의 감수성과 서정성은 이선희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졌고 이후에도 그는 한동안 이선희와 함께하게 된다.

4집에서 가장 높은 관심이 쏠렸던 곡은 '아름다운 강산'이다. 한국 록의 거인 신중현의 명곡을 리메이크한 '아름다운 강산'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지만 대체로 편곡과 연주 면에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이 곡에서마저도 이선희의 가창력만큼은 나무랄 데가 없다. 더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대중적으로 그리 크게 알려지지 못했던 이 명곡이 이선희의 리메이크로 인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게 되었으니, 그 공로 또한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4집에서 윤태영 작사, 작곡의 '세월은 흘러도'를 가장 좋아한다. 쉽고 평이한 멜로디를 지닌 이 노래는 비록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지만 보사노바풍의 세련된 편곡이 대번에 귀를 사로잡는 곡이다. 

이선희 4집(왼쪽 사진)과 5집 앨범 표지.
■곳곳에 사회성 짙은 곡 배치한 5집

5집은 1989년에 나왔는데, 이선희는 여기서 또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앨범 곳곳에 사회성 짙은 곡들을 배치한 것이다. '오월의 햇살'은 80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곡이었고, '한바탕 웃음으로' 역시 시대적 아픔이 배어있는 곡이었다. 직설적이지는 않았으나 가사 속에 은유적으로 감추어진 메시지들은 여느 민중가요 못지않게 깊고 아련한 것이었다. 이 밖에도 5집은 산울림의 김창완이 만든 두 곡이 수록되어 있어 눈길을 끄는데, 같은 해 임지훈에 의해서도 발표되었던 '누나야'와 허밍과 내레이션이 이어지는 독특한 분위기의 곡 '수선화'가 그것으로, 김창완 특유의 가사와 이선희의 여리지만 야무진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수선화'는 다소 실험적인 곡이다. 송시현은 4집에 이어 5집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앨범의 대표곡인 '한바탕 웃음으로'와 '겨울애상'이 바로 그가 만든 곡이다.

■80년대를 관통한 명·가·수 이·선·희

최근 '나는 가수다'에 이어 '복면가왕'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장안의 화제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다른 장, 단점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가수와 뮤지션은 다르다. 따라서 노래를 잘하는 것과 음악을 잘하는 것 역시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물론 뛰어난 송라이팅 능력과 가창력을 겸비하고 두 가지를 다 잘해낸다면 시비의 여지가 없겠지만, 천재적 송라이터이지만 노래가 안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송라이팅 능력은 없지만, 노래만큼은 최고로 잘하는 이 또한 있을 터이다. 우리는 어느 한쪽을 무시하거나 헐뜯을 필요 없이 각각을 인정하면 그뿐이다.

이 대목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것 역시 한가지로 정의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들이 있을 줄 안다. 맞다. 필자 역시도 찬성한다. 가수는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또 각각의 노래마다 어울리는 목소리와 보컬 스타일도 있다. 오직 폭발적인 성량을 가지고 고음 영역에서 시원한 샤우팅을 들려주는 것만이 노래 잘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나지막이 읊조리는 것이 더 탁월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고려해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선희는 탁월한 가수이며 그녀 없이는 결단코 80년대의 가요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 시리즈를 통해 다시 소개되는 이선희의 4집과 5집은 그녀가 풋풋했던 초창기를 지나,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던 송시현을 만나 이루어낸 발전적 성과이며, 80년대를 관통한 그녀의 뚜렷한 발자국을 확인하는 가장 명징한 증명서다. 최성철·페이퍼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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