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의 추억] VIETNAM 메콩강 하구 껀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발 닿는 곳마다 전쟁의 상흔… 아름답고도 슬픈 '메콩델타'

메콩강은 '허리 잘록한 땅' 베트남을 먹여 살린 어머니의 강이다. 황토색 강은 탁하지만 깨끗하다. 맹그로브숲 울창한 껀저에서 호찌민 시내로 들어가다 만난 메콩강 지류의 수상가옥.

맹그로브는 별나다. 짠물과 민물이 몸을 섞는 땅에서 자란다. 뻘에서도 뿌리를 내린다. 썰물 땐 뿌리를 아예 바싹 마른 햇볕에 통째로 내놓는다. 그러나 이 별종은 대단한 나무다. 뒤엉킨 뿌리로 흙이 바다로 쓸려가는 걸 막고 홍수림으로, 산소 뿜는 허파로, 방파제로 구실한다.

맹그로브는 메콩델타에서 딴 쓸모로 소중했다. 베트남전쟁 때였다. 베트콩으로 불렸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은 최신 병기로 무장한 미군과 정면으로 붙을 순 없었다. 숨어 싸워야 했다. 살아야 이길 수 있었다. 맹그로브숲이 은신처였다. 그리고 무기였다. 호찌민에서 50㎞쯤 떨어진 껀저의 맹그로브숲 얘기다. 2000년에 유네스코 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지금의 숲은 그때의 것이 아니다. 네이팜탄이 불태운 것을 복원했다. 하지만 박두순 시인의 시 '나무'처럼, 맹그로브는 '해마다 조금씩 조금씩 뒤꿈치를 들어 키를 높여'간다. 동남아의 아마존은 오늘도 그렇게 자란다.


■맹그로브 섬 껀저 & 원숭이섬

이상기후는 베트남 호찌민에도 와 있다. 우기(5~10월) 때 하루에도 몇 차례 퍼붓던 스콜이 요 몇 년 들쭉날쭉이다. 꼬박 나흘 있었지만 비가 내린 건 한 차례. 이런 탓에 가로수 고사 막으려 주기적으로 물을 뿌린다. 현지 생활 14년차 가이드는 격세지감이라 했다. 변한 게 어디 그뿐일까. 오토바이가 자전거를, 미니스커트가 아오자이를,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를 대체했다. 다만, 커피 맛은 변함없다. "색 진하고 향 짙고 맛 달콤한 커피는 한국으로 시집 간 베트남 신부들이 그리워하는 고향 맛이죠."

밀림 뒤덮은 껀저의 맹그로브숲
미군에 맞선 게릴라들의 은신처
석회질 성분의 열대 밀림 토양은
농민 전사들 지하요새로 둔갑

아오자이→미니스커트 바뀌어도
역사 잊지 않으려는 노력 그대로


호찌민에서 껀저로 가는 길이 재밌다. 차, 카페리, 차를 번갈아 탄다. 이색적인 건물도 눈에 띈다. 사면이 벽으로 막히고 중간중간 작은 구멍이 뚫렸다. 고급 요리 재료인 제비집을 채취하는, 속칭 '제비호텔'이다. 고소득이 보장된단다.

도로변으로 워터코코넛과 맹그로브숲이 펼쳐진 후 원숭이섬에 닿는다. 들머리부터 진초록이다. 맹그로브가 좌우로 빽빽하다. 역시 뿌리가 인상적이다. 물 빠진 탓에 얽히고설킨 뿌리가 선명하다. 세상 밖으로 뽑힌 듯 허옇게 드러난 뿌리는 흡사 고목의 잔가지였다. 뿌리와 줄기의 경계는 불분명했다. 누가 그랬다. 저렇게 허무맹랑해 보이는 뿌리와 뿌리의 연대가 맹그로브의 힘이라고. 그래서 죽은 듯 살아있는 맹그로브가 매년 이파리를 올리고 세상에 초록 그늘 한 줌 드리운다고.

호젓한 감상은 오래 못 갔다. 원숭이들이 숲에서 튀어나와 난리였다. 섬 주인 행세를 하는 녀석들이다. 수십여 마리가 우루루 몰려다닌다. 사람 꺼리는 기색은 전혀 없다. 태연히 벤치에서 낮잠 잔다. 음식 달라고 어슬렁거리다 심통 나면 모자 뺏어 줄행랑치는 녀석도 적잖다. 이 때문에 섬 관리인이 새총을 소지했다. 응징 수단이다.

원숭이섬은 베트남 3대 혁명 사적지 중 하나다. 베트남전쟁 때 격렬한 전투현장이었다. 민족해방전선이 근거지를 여기에 뒀다. 그들의 화력은 빈약했다. 더구나 훈련받지 않은 농민과 그 아들과 딸이 전사였다. 그러나 전쟁터의 지형지물은 그들의 것이었다. 맹그로브숲은 게릴라전 치르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낭패당한 미군이, 그래서 선택한 게 소이작전과 고엽작전이었다. 숲을 깡그리 태워버렸다. 맹그로브숲은 철저히 망가졌다. 그때 사진이 원숭이섬 입구 박물관에 걸렸다.

종전 후 베트남 정부는 이곳을 사적지로 지정하고 맹그로브숲 한가운데에 민족해방전선 유격대 막사를 재현했다. 추모탑도 세웠다. 빗물 받아 식수 만들고 야생 악어 잡던 그 시절을 모형물이 보여 준다. 햇살 막혀 어둑한 막사에 전사들의 사진이 몇 장 걸렸다. 하나같이 젊다. 한국전쟁에 나섰던 학도병이 겹친다.

원숭이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껀저 해변이 있다. 시간 허락되면 들러볼 일이다. 해변 식당 음식값이 저렴하다. 등 누인 의자와 바닷바람. 괜찮은 조합이다. 닭이나 새가 의자를 기웃거릴지도 모르겠다.


■구찌터널

구찌터널을 둘러싼 숲도 제법 무성하다. 하지만 무척 덥다. 등짝 땀이 줄줄 흐른다. 껀저와 달리 숨은 턱턱 막힌다. 그늘 많아도 바람 없으니 그렇다. 호찌민에서 서북쪽으로 40㎞쯤의 거리에 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호찌민(그때는 사이공이었다)으로 구정 공세를 감행할 당시 민족해방전선의 지하요새였다. 땅을 3~4층으로 판 구찌터널의 총 연장은 250㎞쯤. 현재까지 알려진 게 그렇다. 땅밑과 땅밑을 실핏줄처럼 엮은 구찌터널은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

구찌터널은 프랑스 식민통치에 반대하던 시절 처음 만들어졌다. 그때만 해도 길이가 58㎞에 불과(?)했다. 이후 베트남전쟁과 함께 확장됐다. 터널로 진입하는 땅굴은 지금까지 발견된 게 약 2천 개 정도. 입구 폭은 그들 체구에 맞췄다. 덩치 큰 미군의 침입을 차단한 조치였고 땅굴을 나뭇잎으로 위장했다. 미군 기지 아래까지 터널을 뚫었으나 미군은 종전까지 그 존재를 몰랐단다.

땅굴이 가능했던 건 이 일대의 지질 특성 덕분이었다. 석회질 성분이 많다. 비 내린 후 땅굴을 내 산소를 공급하면 겉면이 돌처럼 굳는다. 시멘트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파낸 흙은 흔적 남지 않도록 강에 버렸다. 3~8m 깊이였으니 산소가 부족했다. 이때문에 산소구멍을 마련했다. 땅굴에서 지면까지 구멍을 낸 후 그 위를 바가지로 덮고 흙을 쌓았다. 얼핏 흙무덤에 뚫린 개미구멍 같다. 부비트랩도 인상적이다. 웅덩이 아래에 죽창을 꽂아두거나 쥐덫처럼 생긴 구조물 양쪽에 못을 박아 치명상을 입도록 한 게 대부분이다. 전쟁이 짐승 잡던 장치를 살상무기로 바꿔 놓은 게다. 

구찌터널로 들어가는 수많은 입구 중 한 곳.
영화상영관에선 영상물을 한국어 버전으로 틀어 준다. 제목은 '구찌유격대'. 12차례 융단폭격에 구찌마을의 숲과 가축과 집이 불타는 장면, 여전사와 농민전사의 활약상을 담았다. 영상물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민족해방전선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 구찌터널에서, 혹은 껀저에서 그랬다.

베트남전쟁 중 구찌마을 사람들은 결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한 손엔 총을, 다른 손엔 호미를 쥔 그들은 땅 위에서 살다가 땅밑으로 내려갔을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마을을 지켜냈다.

호찌민 숙소로 돌아가다 사이공 강 노천카페를 찾았다. 강물이 제법 세차다. 해질 무렵이었고 유람선 뒤쪽 하늘이 붉어졌다. 남중국해로 흘러가던 강물이 밀물이 되어 거슬러 들어왔다. "썰물이 되면 제 흐름대로 갈 겁니다." 하긴, 강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노천카페 앞에서 시간이 흐르고 촉촉한 바람이 따라 흐른다.

호찌민·껀저=글·사진 임태섭 기자 tslim@busan.com

TIP

■항공편


베트남항공(www.vietnamairlines.com)은 부산∼호찌민 노선을 매일 운항한다. 오전 10시 출발. 5시간쯤 걸린다.

■물가

베트남 대표 음식인 쌀국수를 원하면 호찌민 떤선녓국제공항 옆 슈퍼볼 건물 지역에 위치한 '퍼동안'을 추천한다. 국물이 매콤하고 시원하다. 2천600원. 길거리를 걷다 보면 커피와 사탕주스를 판매하는 노점상이 많다. 달달한 게 개인적으로 입맛에 맞았다. 팩에 빨대 꽂은 후 검정 봉지에 넣어 준다. 일종의 테이크 아웃인 셈. 각 520원, 250원 안팎.

호찌민 시내 한 쌀국수 식당에서 맛본 닭고기 쌀국수.
베트남 물가를 너무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호찌민의 경우 예상밖으로 센 편이다. 생필품류는 대체로 비싸다. 수입해서 들여온 제품이 많기 때문이다. 분유 값과 술값도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음식값은 저렴하다. 우리나라의 50~60% 수준.

■골프장

호찌민에서 1시간 10분 거리에 있는 '트윈도브스' 골프장. 한국의 전자랜드가 투자해 2009년 개장했다.
호찌민은 한때 골프장 건설이 붐을 이뤘다. 현재 호찌민 주변에서 운영 중인 골프장은 모두 7개. 전자랜드가 투자해 2009년 개장한 '트윈도브스'는 페어웨이 잔디가 한국에서 플레이하는 느낌을 준다. 한국인과 외국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전 SBS해설위원 배석우 씨도 골프장 관리·조경에 후한 평점을 줬다. 27홀 국제 표준 챔피언십 회원 골프코스다. 호찌민에서 1시간 10분 거리. 1994년 개장한 '송베CC'는 베트남 최초로 국제규격을 갖춘 챔피언십 골프 코스다. 현지에서 도전적인 코스로 유명. 미국 골프협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레이팅된 코스이기도 하다. 최근 사막코스가 추가됐다. 호찌민에서 40분 거리. 2012년 개장한 '메콩CC'는 전반적으로 시설이 수준급이다. 코스가 어렵지 않아 편안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 18홀 모두 거리가 길어 긴 클럽을 사용하는 게 좋다. 호찌민에서 1시간 30분 거리. 관련 여행 상품은 트랜스아시아투어(051-468-0806)로 문의하면 된다. 임태섭 기자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