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가 무대, 생산자가 소비자… 틀 깨는 '문화 소통' 새 바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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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시민이 만나 강연이든 공연이든 소통하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다. 사진은 정상래 참나무 서예·전각연구소 대표가 지난 3일 부산 해운대의 한 커피숍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강연을 펼치는 모습. 강선배 기자 ksun@

왼쪽 사진을 한 번 보자. 지난 3일 오후 8시 반쯤 부산 해운대 '아슬란'이란 카페의 정경이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다들 강연에 열중하고 있다. 연령대는 다양하다. 중년 남녀도 있지만 앳된 젊은 여성도 끼어 있다. 옆자리 사람을 아예 모르거나 한둘 정도 아는 사이다. SNS를 통해 강연을 알고 왔거나 지인을 따라 온 사람도 있다. 강좌가 끝나자 남아 차를 마신 이도 있지만 대부분 곧바로 돌아갔다.

강연은 '서예 : 서예와 전각 예술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했다. 강연자는 참나무 서예·전각연구소 정상래 대표. 그 역시 강연 주최자는 아니다. 지인 권유로 강연에 나섰을 뿐. 자주 하던 강연이어서 부담은 크지 않았다.

해운대 '아슬란' 이야기카페 서예 강연
시향단원 동참 '토리스 하우스음악회'
특정 장르 한정 않고 참여·탈퇴 자유로워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일에도 도움 받아


그런데, 이 강연은 지난 2월부터 이어졌다. 명칭은 '이야기카페'다. 강사도 매번 바뀌고, 참석자도 자유롭게 왔다 간다. 교수 8명이 진행하고 홍보를 하지만 그들 역시 주최자 역할은 사양한다.

문화를 공유하는 풍경이 참 생경하지 않은가. 기존 문화공간도 아니고, 주최자도 따로 없이 문화 소통이 이뤄지는 풍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가 문화 생산자이고, 또 문화 소비자일까. 강연자인 정 대표가 문화 생산자인가, 참석자는 그저 강연을 '소비'했을 뿐인가.


■나누며 경계 허무는 전문가

문화 생산자라면 누구를 말할까. 소설가 시인 음악가 화가…? 하지만 문화 생산자를 딱히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생겨나고 있다. 문종대 동의대 교수 같은 사람이다. '이야기카페' 초기 산파 역할을 한 인물. 문 교수는 "(이야기카페는) 강의를 듣는 자리가 아니다. 다른 생각이나 세계와의 만남이라 할까. 관습화 된 사고나 편견을 점검하고 바꿀 수 있으면 된다.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는 자체가 하나의 문화 생산 아니냐"고 되물었다.

문화가 그동안 전문가 중심이고 대중은 수용자에 머물렀다면 이제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를 하나로 복원하자는 얘기였다.

금정구의 한 카페에서 열리는 '토리스 하우스음악회'. 첼리스트 김판수 제공음악이나 미술 같이 전문가 영역이 공고하던 문화예술 장르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부산 금샘로의 카페 토리스에서 열리는 '토리스 하우스음악회'가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음악회는 전문 음악인들이 중심이다. 벌써 2년째다. 부산시향 단원들로 이뤄진 '라 무지카 앙상블'이 운영한다. 앙상블 단원인 첼리스트 김판수 씨가 운영하는 카페를 장소로 내놓는다. 음악을 향유하고 싶지만 벽을 느낀 시민들을 가로막았던 경계를 허물자는 전문가 쪽의 시도다.

음악회가 무료는 아니다. 이유가 있다. "후원하겠다는 분도 있지만 표를 사라고 한다. 문화는 사서 즐긴다는 인식을 넓히기 위해서다"는 게 김판수 씨의 답. 그런데 표는 월초에 동날 때가 많다. 친밀감 가득한 카페에서 '프로 연주'를 상당한 비용을 물고라도 기꺼이 소비하겠다는 시민이 적지 않은 것이다. 김판수 씨는 "연주가 왜 어려운지, 악기는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직접 대화를 나눈다는 게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바뀐 문화 소비자들

시민도 더 이상 문화 소비자에만 머물 생각은 없다. 50대인 옥태권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은 문화 생산자이면서 적극적인 소비자이기도 하다. 다른 장르 사람과 함께하는 네댓 개 모임이 그 매개다. 옥 회장은 "어떤 모임은 열심히 다니다 그만둔다.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공연을 함께 관람하는 모임인 '아부공사' 결성 때 도움을 주는 등 조력자 역할도 즐긴다.

부산문화회관 공연기획자인 조승환 씨는 문화 생산자다. 하지만 그는 '부통리(부산통기타리스트)'에서 통기타를 배우고, 다른 장르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기도 한다. 서면 복합공간 '홍' 같은 장소는 모임 세미나나 공연을 위해 자주 찾는 곳. 조승환 씨는 "모임에서 일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부담이 되지 않겠나. 그래도 알게 모르게 업무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했다.

자동차 세일즈맨 장현수 씨는 문화 모임을 즐기다 연극 '우리 집엔 리어왕이 산다' 기획을 맡기도 했다. 그가 참여하는 문화모임은 3~4개. 장 씨는 "시민극단 '쌈' 활동을 하는데, 그때 기획을 맡은 걸 조금희 연출이 눈여겨보고 요청이 왔다. 막상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전문가 영역에 뛰어드는 것은 아직 무리"라고 했다.


■'신(新)살롱문화'가 뜬다

과거 문화 소비자였던 시민들이 일반인 전문가 가리지 않고 모임을 만들거나 즐길 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때론 문화 생산자를 자처하기도 한다.

새로운 문화 소통은 극장 공연장 갤러리 같은 기존 문화공간에서 일방소통식으로 이뤄지는 것과는 다르다. 마침 도시민의 사랑방이 되고 있는 카페나 커피숍 같은 공간을 적극 활용한다. 특정인 혹은 단체가 '문화 강연'이나 '인문학 카페' 간판을 걸고 펼치는 소통 방식보다도 한층 자유로워 보인다.

문화 생산자와 문화 소비자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 문화 소통 방식이 점점 늘며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이름 하여 '신살롱문화'라 할 수 있겠다. 18세기 프랑스 부르주아들이 고급문화를 즐기던 '살롱문화'와도 유사하다.

물론 문화가 쌍방향으로 소통되는 방식을 놓고 다양한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시민들은 유럽식 살롱문화로 회귀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들 스스로를 특정 계층으로 여기지도 않고, 오히려 자유로운 참여와 탈퇴를 선호한다. 다만 대중문화를 무조건 수용하는 방식을 넘어 한층 적극적으로 문화를 소비할 뿐이다.

인문학 강연, 음악회, 전시회 등 특정 장르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장르를 넘나들거나 공연 공동관람 같은 형태도 있다. 출판사 산지니가 '저자와의 대화'를 서면 러닝스퀘어 같은 곳에서 독자 20~30명만 초청해 친밀한 자리로 만드는 등 새로운 소통방식을 적극 활용하려는 업계도 있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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