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낙태(落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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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수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자식이 많기로 꼽을라치면 흥부를 따라갈 자가 없다. 먹을 것도 변변찮은 터에 자식만 스물 넷을 두었다. 그것도 가족계획을 한 게 그렇다. 흥부전의 이본(異本)인 '박타령'에 보면 흥부 부부의 가족계획 방법이 나온다. 다름 아닌 낙태다. 애를 뗀다고 누에를 집어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민간요법 중의 하나다. 민간에서 흔히 쓰는 낙태 비방에는 메밀을 이용한 것이 잘 알려져 있다. 높은 언덕에서 스스로 몸을 굴려 낙태를 시도했던 여인들의 기구한 팔자도 자주 듣던 옛날 이야기다.

조선중기 널리 알려진 낙태처방 중엔 '광해군 비방'이란 부적이 있다. 즉위 후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며 많은 왕자를 두고 싶어 했던 광해군이 어느날 꿈을 꿨다. 꿈속에 하늘에서 내려온 대관이 "한 아들도 보전치 못할 텐데 어찌 많은 아이를 원하느냐"고 꾸짖었다. 잠에서 깬 광해군이 느낀 바가 있어 술사(術士)에게 낙태부적을 만들라 했다. 이 부적 값이 나락 열 섬 값이었다 하니 당시로선 상당히 인기상품이었던 모양이다.

잉태(孕胎)의 태(胎)는 육(肉)에 태(台)의 음이 합쳐진 글자다. 태(胎)는 시(始)와 통해 '처음',즉 육체의 탄생을 의미한다. 잉태는 태아를 임신하는 것만 아니라 꿈과 이상을 채우기를 시작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당연히 낙태는 꿈과 이상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플로리다의 13세 난 소녀가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며 낙태를 허락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키울 능력이 없으면 낙태가 답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부처가 문수사리 법왕자의 질문에 답한 설법이다.

"부처시여,사바세계 인간들이 굶주리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단명한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잉태한 태아를 낙태시킨 업(業) 때문이다." 벌써 2천500년 전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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