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국교수의 동남아 들여다보기] <17> 라이따이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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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의 자식' 멸시 속 성장

동남아 국가들 가운데 베트남만큼 한국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도 없다. 고려 시대에는 한 베트남 왕자가 내란을 피해 한국에 망명하여 오늘날 화산(花山) 이(李)씨의 조상이 되었는가 하면,조선 시대에는 지봉 이수광의 글이 베트남 지식인들 사이에 꽤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두 나라가 모두 유교 및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었기에 그러한 만남들이 가능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두 나라간 관계는 베트남전쟁을 통해 매우 깊고 복잡하게 얽히게 된다. 그 얽힌 관계의 한 쪽에는 한국 군인들의 베트남전쟁 참가와 전쟁수행 과정에서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다른 한 쪽에는 라이따이한 문제가 놓여 있다.

'라이따이한'이란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한국인들과 베트남 여인들 사이에 태어난 베트남 한인2세를 가리킨다. 1964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한국 군인들과 민간인들은 모두 약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경멸적인 '혼혈잡종'을 뜻하는 '라이'와 전쟁 당시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명칭으로 통하던 '따이한'의 합성어인 '라이따이한'은 대충 '한국계 혼혈아'로 번역될 수 있다.

'라이따이한' 문제는 한국인들이 베트남전쟁 기간 그리고 특히 1975년 베트남의 공산화 후 베트남 '아내'와 자녀들을 버리고 무책임하게 한국으로 귀국한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베트남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관심이 가세한다. 그에 비해 미국인들과 미국 정부는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의 베트남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날 라이따이한은 최소 5천 명에서 많게는 3만 명으로 추산된다. 현재 30~40세 사이의 연령층에 속해 있는 그들은 지난 30년간 베트남 사회에서 '적군의 자식'으로 따돌림을 받으며 살아왔다.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그들은 대개 힘든 노동이 요구되거나 멸시받는 직업에 종사해왔다. 외모에서도 종종 베트남인들과 구별되는 라이따이한들은 베트남 사회에서 겉돌고 있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이후 양국간 경제적 및 인적 교류가 증대되면서 '신(新) 라이따이한'이 생겨나고 있다. 사업상 베트남에 장기적으로 가 있는 한국인들과 현지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2세들이 그들이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베트남에서 철수할 때 현지처와 자식들을 버린다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라이따이한들의 생계와 베트남 사회에서의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의 여러 민간단체들이 다양한 교육 및 직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라이따이한 스스로가 베트남 사회에 동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남자들이 베트남에서 이룬 가정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부산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seathai@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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