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신춘문예-시] 뱀을 아세요? / 윤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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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박나리 기자 nari@

뱀이 왜 기어 다니는지 아세요

불안하기 때문이래요

손발 없이 귀머거리로 사는 동물은 또 없거든요

독이라도 품어야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얼마나 불안했으면 혀가 다 갈라졌겠어요

남의 땅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혹시 은인을 찔러 죽인 전갈 이야기 들어 보셨어요

본능을 장전하면 갈기고 싶어지죠

본능은 의지보다 늘 앞서니까요

하지만 본능보다 앞에 불안이란 게 있어요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들은 불안해하는 것들이래요


독을 품은 것들은 기억력이 없어요

어느 한구석 오목한 데가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뒷걸음질 칠 수 있는 담력이 없어서래요

이방異邦의 밑바닥에 몸을 대고 살다 보면

굳이 시간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간혹, 숨 막히게 달 밝은 밤이 있잖아요

그런 날이면 통째 삼킨 먹이를 삭히며

똬리를 틀어요 철이 든 거지요

저도 한번 쭉 뻗고 살고 싶겠지요

하지만 마음 놓치면 독을 품긴 힘들어져요

무딘 칼은 피차 고통이거든요


번질거리던 각질의 모서리가 굵게 갈라져

살을 후비며 파고든 어느 밤

제 살갗을 찢어 벗겨 내며 뿌리치고,

쉼 없이 날름거리며 생을 지켜 냈어요

이런 아침은 늘 뻐근해요

눈꺼풀 없이 잔 눅눅한 잠을 말려야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거든요

하늘에서 가장 먼 쪽으로 붙어 다니지만

햇살의 따스함을 알고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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