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화 아파트에 대한 인문학적 비판
아파트에 대한 인문학적 비판인 '아파트'가 출간됐다.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70년대 이후 정부와 민간기업은 공공용지는 줄이고 전용면적은 늘리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공동주택의 의미가 사라지고 아파트는 사적인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의 의미 사라지고
치부 수단으로 전락했다.
공공성은 뒷전이고
이윤추구에 골몰하는 풍토,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에서
학습된 바 크다.
주거형태는 인간본성에 영향을 미친다. 공공성은 뒷전이고 이윤추구에만 골몰하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건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에서 학습된 바 크다. 삶의 공간이 사적 욕구 충족으로만 기능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한국 국민의 60%가 아파트에서 산다.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빅밴,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 견줄 서울의 건축물은 아파트라고 한다.
아파트의 대단지화는 아파트가 본격 들어설 시점인 70년대 말부터 그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담장으로 주변 공간과 격리한 채 고층 주거동을 나란히 배치하며 단지 내부에 오픈 스페이스를 확보하는 설계가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전용공간의 고급화, 그리고 고밀화와 초고층화의 한결같은 길을 걸어왔다. 지난 2006년 발코니 구조변경 합법화 조치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고층화, 격자 배치, 동 간 간격 축소 등은 공용공간을 줄여 주거환경을 악화시켰다. 대신 전용공간 쪽에서는 발코니를 확대하고 전면폭을 키웠다. 초고밀도 개발에 대한 보상인 셈이었다.
부산의 경우를 보자. 동래 럭키아파트(1980년대), 해운대 신도시(1990년대), 해운대 센텀파크 아파트(2000년대)를 거쳐 해운대 마린시티(2010년대)를 보면 대단지화, 초고층화의 놀라운 변모를 느낄 수 있다. 물론 공공적 환경이 희생되고 고층화할수록 사적 공간의 고급화, 대형화와 함께 투자가치라는 두둑한 반대급부가 주어졌다.
짧은 기간의 변신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시간의 축적을 통해 삶이 나아진다는 보편적인 믿음은 과연 신뢰할 만한가. 불행하게도 한국의 보편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에 관한 한 전혀 그렇지 않다.
아파트는 편리함과 쾌적함이라는 가치를 동원해 주거환경의 질적 악화를 교묘하게 포장하였다. 주거동 사이에 띄워야 할 거리를 나타내는 지표인 인동계수는 1.25에서 0.8로 줄었다. 이 수치는 아파트를 바짝 붙여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단지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음을 보여 준다.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이유는 초고층화, 발코니 확장 등으로 쾌적해진 것으로 느끼는 착시현상 때문이다.
주차장이 모두 지하로 내려가면서 내려다볼 수 있는 녹지 총량은 많아졌다. 하지만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숫자로 나누면 개인에게 배분되는 양은 보잘것없이 줄어든다. 결국 고밀도 개발의 후유증을 숨기기 위한 고층화의 눈속임이다.
초고층화는 단절을 더욱 심화시킨다. 한밤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고 치자. 빈 그릇을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이라면 대문 밖에 내놓는다. 이에 비해 아파트는 현관 입구일 가능성이 높다. 눈이 내렸다고 치자. 아파트 거주자는 아파트 단지 안팎의 제설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관리사무소 직원을 탓하거나 지자체를 불평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나 단독주택에 사는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계단이나 대문 앞 눈을 스스로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 박철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