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부산 등대] 1. 오륙도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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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세상 밝히는 호롱불처럼 든든하고 다정하게 바다를 지킨다

오륙도등대는 흰 등대

등대에다 대고 바다는

푸른 먹물로 행서를 쓴다

물새가 들여다보곤 끄덕이다 가고

해초가 달라붙어 낙관을 찍는다

오륙도등대는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등대

짐작인들 했으리

웃물 아랫물 다가가고 다가와

마침내 합치는 동해와 남해

두 바다가 하나 되면서

먹물 듬뿍 묻혀 눌러쓴 글씨

한 자라도 놓칠세라

어둡다 싶으면 호롱불을 켠다

- 동길산 시 '오륙도등대'



등대 등은 등불 등(燈). 밤하늘 반짝이는 등불이 별이라면 밤바다 반짝이는 등불이 등대다. 사람 마음엔들 등불이 없으랴. 하루하루가 밤하늘처럼 캄캄하고 밤바다처럼 캄캄할 때 순간순간 반짝이는 마음의 등불. 서정시인 정일근은 기다리는 마음과 보고 싶은 마음을 이어주는 눈빛이 등대라고 노래한다.

부산은 등대의 도시다. 여섯 광역시 가운데 등대가 가장 많다. 바다를 끼지 않은 광역시는 그렇다 치고 울산 인천과 견줘서도 부산은 단연 등대의 도시다. 유·무인 등대가 부산은 65곳이고 울산은 49곳, 인천은 35곳이다. 등대의 도시 부산은 그래서 반짝이는 도시다. 밤바다 등불 반짝이면서 배를 불러들이고 마음의 등불 반짝이면서 사람을 불러들인다.

오륙도는 부산의 상징. 부산바다를 상징하고 부산기질을 상징한다. 부산바다는 남해와 동해를 아우르는 바다이고 남해와 동해 경계가 오륙도다. 남해는 섬이 많은 다도해. 다정다감한 바다다. 동해는 탁 트인 바다. 거침없다. 부산사람의 다정다감하고 화통한 기질은 부산바다에서 비롯되고 부산바다 한가운데가 오륙도다.

오륙도는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명승지다. 문화재청은 경치가 빼어난 곳을 국가명승지로 지정한다. 부산에선 오륙도와 태종대 두 군데뿐이다. 오륙도는 섬이 다섯이 됐다 여섯이 됐다 해서 붙여진 이름. 보는 위치에 따라서 그렇고 물이 들고 빠짐에 따라서 그렇다. 섬은 뭍에서 수평선 쪽으로 이어진다. 섬마다 이름이 있다. 뭍에서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이다.

등대섬의 애초 이름은 밭섬. 밭처럼 평평해서 그렇게 불리다가 등대가 들어서면서 등대섬으로 불린다. 등대는 1937년 11월 세워졌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필요해 세웠지만 지금은 한반도 관문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해양도시 부산의 앞바다를 굽어보는 터줏대감이다. 처음 세울 당시 6.2m이던 등탑은 1998년 27.5m 높이로 우뚝 섰다. 1998년 오륙도등대는 의미가 남다르다. 우리나라 최초 시민현상 설계공모로 세워진 등대다. 주제는 '자연과 인공의 극적인 만남'.

등탑을 높이면서 불빛도 높아지고 밝아졌다. 10초에 1회 반짝이는 흰색 섬광이 도달하는 거리는 21마일, 40㎞에 이른다. 대마도에서도 오륙도 등대 불빛이 보인다. 물론 여기서도 대마도 불빛이 보인다. 해가 날 때는 태양열로 충전하고 해가 가린 날이나 장마철에는 발전기 2대를 교대로 가동한다. 누구든 등대 구경이 가능하다. 등대전시관도 있다. 국내외 등대 역사를 알려 주는 사진과 1930년대 등대 공사 당시 자재 일부를 전시한다. 관광객이나 낚시꾼에게 화장실이 개방돼 편하다.

오륙도등대 김흥수 소장(오른쪽)이 오륙대등대에 마련된 등대전시실에서 동길산(왼쪽) 시인에게 한국 등대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오륙도등대는 유인등대. 사람이 지키는 등대다. 유인등대는 20마일 이상 떨어진 데서 식별이 가능하다. 멀리서 오는 배가 육지를 처음 인지한다 해서 육지초인 등대라고도 한다. 모든 유인등대는 희다. 부산에 있는 유인등대는 3곳. 오륙도와 영도, 가덕도등대다. 무인 등대는 20마일 이하의 연안을 항해하는 선박이 배의 위치를 아는 데 필요한 등대다. 부산엔 62곳이 있다.

"섬이 흔들리는 걸 느낄 정도예요." 오륙도 등대지기는 모두 3명. 1988년 이후 항로표지관리원으로 불리지만 정겹긴 등대지기가 정겹다. 등대도 정식 명칭은 항로표지관리소다. 2명이 4박 5일 근무하고 1명은 2박 3일 쉰다. 한 달 전체적으론 20일 근무하고 10일 쉬는 셈이다. 김흥수(45) 소장이 지난여름 일을 들려준다. 태풍이 연이어 들이닥쳐 배가 뜨지 않는 바람에 보름 가까이 근무했다고. 암벽을 때린 파도가 등탑까지 튀어 오를 정도가 되면 섬이 흔들리는 게 감지된다고 한다. 가파른 비탈길 계단을 내려오며 그 얘기를 듣는데 다리가 다 떨린다.

등대전망대에 서니 수평선이 눈높이에서 펼쳐진다. 수평선은 완만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이지 싶다. 저 수평선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난 모가 조금은 깎여 나갈지 모르겠다. 구름 사이사이로 새어 나온 햇살이 바다 한가운데 기둥을 세운다. 햇살 기둥이 열은 넘어 보인다. 바다와 하늘의 신이 힘을 모아서 세운 신전의 기둥 같다. 졸지에 나는 스케일이 큰 사람이 돼 버린다.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넓어진다. 오륙도등대에 와서 덤으로 얻는 마음치유다.

등대 불빛이 든든한 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한결같다는 것. 희게 반짝이는 등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희게 반짝이고 10초에 한 번 반짝이는 등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10초에 한 번 반짝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주 오래 만나지 못해도 마음만은 언제나 그 자리에 한결같았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을 이어 주는 눈빛이 등대이듯 언제나 한결같은 눈빛이, 등대 같은 눈빛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면 좋겠다.

"SK 사는데 등대는 처음 와 봤어요." 노재현 씨는 오륙도 선착장 가는 길목 아파트에 산다. 서울말씨를 쓰며 부산에 온 지 3년 됐다는 가정주부다. 반짝이는 도시 부산에 이끌렸고 요즘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 와 본 오륙도지만 경치도 참 좋고 사진 찍기도 참 좋다며 '참 참'을 연발한다. 용호동 선착장에 오륙도 가는 배가 있다. 어른 1만 원. 아이 5천 원. 왕복요금이다. 선착장에 가려면 경성대 앞에서 용호동 SK뷰 가는 시내버스나 선착장 가는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 선착장에선 해녀들이 해삼이니 돌멍게니 해산물을 내다 판다. 오륙도에서 등대 안내를 받고 싶으면 전화를 해 보자. 휴대폰이라도 공용전화라서 '등대지기'가 받는다. 010-4564-2062, 동길산/시인

dgs1116@hanmail.net
오륙도등대는 오륙도 섬 중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등대섬에 서 있다. 그 등대전망대에 서면 더없이 완만하고 부드러운 수평선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사진=김진문 사진가


문 : 부산 최초의 등대는?

답 : 제뢰등대


"그게 맞겠네요." 오륙도등대 근무자 이병희 씨가 흔쾌히 맞장구친다. 인류 첫 등대는 모닥불 아니겠느냐는 질문에 그렇겠단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던 50, 60년대 갯가 장면이 생각난다. 돌아오지 않는 배를 기다리며 밤새 타오르던 모닥불! 애간장 태우는 모닥불이었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생명력의 모닥불이었다. 횃불 역시 첫 등대에 들어가리라.

건축 양식상 첫 등대는 이집트 파로스등대다. 기원전 2세기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세운 등대로 높이가 무려 134m라고 전해진다. 여러 차례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14세기 완전히 무너졌다. 1994년 높이 4.5m, 무게 12t에 이르는 등대 꼭대기 여신상을 비롯한 등대 잔해 수백 점이 해저에서 인양되면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한국 최초의 등대는 인천 팔미도등대다. 최초 점등일이 1903년 6월 1일이다.

부산 최초의 등대는 무엇일까. 나눠서 봐야 한다. 최초 등대는 1904년 8월 점등한 초량도등이다. 도등은 배를 안전하게 유도하는 등대. 초량 고관 앞 항구 진입로에 세운 암초 식별용 철탑으로, 일대가 매립되면서 철거되었다. 무인등대 최초는 감만동 제뢰등대. 감만동 앞바다를 오리여울이라 부른다. 오리여울의 한자식 표현이 제뢰( 瀨)다. 1905년 6월 점등했으며 2001년 등대 기능을 마치고 영구 보존돼 있다. 상태가 양호하다. 현존하기에 부산 최초 등대로 봐도 무방하겠다. 이듬해 12월 점등한 영도등대는 우리나라 10번째 등대. 유인등대론 부산 최초다. 동길산/시인


동길산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뻐꾸기 트럭' '무화과 한 그루' 등과 산문집 '우두커니' '길에게 묻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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