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 파문] 내용과 유출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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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간부가 삼성 협박과정서 유출

김영삼 정부시절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특수도청팀의 실체가 드러나고 이 팀이 도청했다는 재계와 언론계 유력인사의 대화내용이 알려지면서 정가에 도청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국정원은 이와 관련,'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한다'는 입장이지만 국정원이 과거 정권안보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다는 결정적 사건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여 매우 곤혹스런 모습이다.

미림팀의 존재를 증언한 전 안기부 직원 김기삼씨는 22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당시 활동내용을 전했다.

김씨는 "안기부 인천지부장으로 있던 오정소 실장이 94년초 대공정책실장으로 부임하면서 미림팀을 재조직,공모라는 사람을 팀장으로 팀원을 2~3명 꾸렸다"며 "당시 매일 한군데 도청작업을 나갔다"고 밝혔다.

김씨는 "그 내용은 당시 김덕 안기부장에게는 보고하지 않고 오실장에게만 보고했으며 그가 내용을 선별,청와대에 보고를 했다"며 "팀 자체에 대해 김 부장은 몰랐다고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 중 MBC가 확보한 97년 대선당시 한 일간지 사장과 재벌 고위층의 대화테이프는 미림팀이 한 음식점에서 도청한 내용이다. MBC가 21일 저녁뉴스에서 그 내용 중 당사자 음성 등을 상세히 알리지 못한 것은 도청 자체가 '불법'이라며 그 내용을 보도하지 말라고 제기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 때문이다.

그러나 KBS는 재벌 총수가 유력한 한 대선후보에게 다른 사람을 거치지 말고 직접 중앙일간지 간부를 통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하는 등 언론계와 재계 인사의 대화내용을 상세히 알렸다.

여기에는 유력후보였던 모 후보가 이 기업에 30억원을 요구했고 또 다른 모 후보는 10억원을 요구했으나 해당 기업은 유력후보에게 먼저 대선자금을 줄 것을 논의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 두 사람은 30억원은 무겁다며 모 후보의 동생에게 돈을 건네는 장소로 백화점 지하주차장을 정했으며 대기업 고위인사는 지금 분위기에서 모 후보가 안될 것 같다고 걱정하자 일간지 인사도 이에 동조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일간지 인사는 기아자동차를 해당 기업이 인수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한 뒤 정치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재계 인사에게 제시하는 등 당시 경제계의 이슈였던 자동차회사 인수합병 등도 거론된 것으로 보도됐다.

또 MBC는 도청내용에 명절 떡값제공 리스트도 포함돼 있으며 리스트에는 정치인 뿐 아니라 전·현 검찰 고위관계자들도 들어있다고 전했다.

그러면 당시 안기부장도 몰랐다고 할 정도로 비밀리에 운영된 미림팀의 도청테이프가 어떻게 유출됐을까.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퇴직한 안기부 직원이 테이프를 들고 나가 이를 미끼로 삼성에 수억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는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다. 삼성은 이를 무시하고 안기부에 신고했지만 결과적으로 테이프가 외부에 흘러나간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가정보기관을 동원해 대선후보 등 주요인사들의 동향을 도청해왔다는 의혹이 이번에 드러남에 따라 관계자들의 책임론 등 적지 않은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김덕준기자

casiopea@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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