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뉴스] 바다와 명화 11 / 마티스 '오세아니아, 바다' vs 클레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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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된 기호 속에 비친 바다의 '진면목'

마티스 '오세아니아, 바다'

바다에 대한 그림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바다를 처음 본 후 바다를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어쩌면 그의 그림이야말로 바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정보들은 사실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선입견을 만드는 역할을 더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회에 소개할 두 명의 화가들은 대상에 대한 이와 같은 관습적인 재현에서 벗어남으로써 대상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노력한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바다에 대해 서구의 다른 화가들과는 구별되는 매우 독창적인 해석을 선보임으로써 바다의 진정한 면모를 구현하고자 한 화가들이기 때문이다.

● 어린아이처럼 신선함과 천진함 오롯

야수파의 중심적인 인물로 알려진 프랑스의 화가 마티스는 한참 화가로서 명성을 다질 무렵 타히티로 여행을 갈 기회를 얻게 된다. 마티스는 15년 후 이 여행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작품으로 남기는데, 이 작품은 이후 그의 말년의 걸작이자 현대 서양미술의 핵심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된다. <오세아니아, 바다>(1946)가 바로 그 작품으로 마티스가 종이 자르기 기법으로 만든 최초의 대형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인생이 저물 무렵 마티스는 가위라는 새로운 도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 자르기 기법은 마치 어린아이의 유희를 모방한 기법처럼 보인다. 실제 마티스는 “예술가는 어린아이가 사물에 다가갈 때 갖는 신선함과 천진함을 보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세아니아>에서 우리는 작가의 이와 같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림이 우리에게 처음 전하는 충격은 아마 황금색으로 묘사된 바다일 것이다. 마티스는 오세아니아의 바다를 보고 황금색의 잔 속의 빛을 바라보는 감동을 느꼈다고 고백했는데 이 황금색으로 칠해진 바다는 자신의 감동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마티스의 바다는 카펫처럼 평평하며, 그 속에서 다양한 바다 생물들은 모두 흰색이며 규격화된 모양을 하고 있다.

마티스는 이슬람 문명에 깊게 경도되어 이슬람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문양들을 작품 속에서 재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오세아니아>에서 표현된 정형화된 규칙을 통해 묘사된 바다생물들은 그의 이와 같은 바람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마티스는 사진이 보여주는 빈곤한 이미지가 자신이 대상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를 해칠까하는 우려로 작품을 만드는 동안 오세아니아의 사진을 절대 참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오세아니아>를 통해 사진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오세아니아 바다의 진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오세아니아> 앞에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바다생물을 바라보면서 바다 전체를 지배하는 질서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평평한 황금색의 바다를 통해 바다가 주는 무한함과 여유로움, 밝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클레 '출범'
● 화가가 보여주는 볼 수 없는 세계

클레는 남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재능을 두 가지나 갖고 있어, 이로 인해 진로에 고민을 했던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음악과 미술에 모두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클레는 결국 미술가의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러나 후에 그의 음악적 재능은 서양 미술계에 새로운 미학을 선사하는 계기가 되었다. 클레는 음악적인 구조로 그림을 그렸는데, 악보 위에 음표들을 배열하듯이 색채들을 정확하게 배열해야 한다고 주장한 화가였다.

그는 음악에서 다양한 음이 조합되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듯이, 미술에서도 독립된 주제들이 동시에 등장하여 마치 음악의 곡조처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클레의 이러한 독창적인 생각은 튀니지 여행 후 더욱 구체적으로 변했다. 그는 마티스처럼 이슬람 문명에 크게 영향을 받았는데, 튀니지에서 색과 자신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후에 토로하였다. 클레는 이 여행을 통해 자연의 법칙에서 조합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같은 이유로 클레는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클레의 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사물을 지배하는 체계를 화가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클레의 작품 <출범>(1927)은 바로 이러한 작가의 예술관을 엿보게 해준다. 그림에서 새카만 바다는 색색의 배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배들은 삼각형, 사각형, 원의 조합으로 그려져서 마치 음표의 조합을 통해 음을 만들어내는 악보를 연상하게 한다. 그림의 하단에 그려진 주황색의 화살표는 이 배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는 듯 하다. 배의 형태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화면의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배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왼쪽의 배들에 비해 오른쪽의 배는 돛의 폭이 더 좁고 선체가 길고 날카롭게 그려져있다. 왼쪽 배들의 돛에 그려진 기하학적인 무늬 역시 오른쪽 배의 돛에서는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배들의 이와 같은 모습은 정박해있다 속력을 가해 출범하는 배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바람을 맞아 더욱 뾰족해진 돛과 파도를 맞아 더욱 가늘어진 것처럼 보이는 선체를 표현하고 있는 클레 특유의 표현법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배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자면, 출범하는 배들의 움직임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클레는 색채와 형체를 이용하여 막 출범하는 배들이 보여주는 특별한 교향악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셈이다.

마티스와 클레의 단순하고 정형화된 기호처럼 변한 바다 풍경들을 보면서, 우리는 수천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이 남긴 동굴 속의 상형문자들과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형문자를 앞에 두고 우리가 느끼는 경이로움은 이 수수께끼 같은 문자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어떤 진리를 전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에서 올지 모른다. 우리가 수천 년 전 바다를 처음 마주한 우리의 조상의 눈으로 오늘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면, 어쩌면 마티스의 황금 물결과 클레의 검은 밤바다, 푸른 달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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