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뉴스] 항공모함 이야기 11 / 미드웨이 해전 대재앙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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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관으로 변한 제국의 자부심

니미츠, 야마모토 (왼쪽부터)

지난 6월 4일 하와이 오아후 섬에서 2,100㎞ 떨어진 미드웨이 섬에 현 태평양함대 사령관 세실 헤이니 제독을 비롯한 장성들이 방문했다. 70년 전인 1942년 6월 4~7일 사이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일거에 뒤집은 역사적 해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미드웨이 해전 두 달 전인 4월 18일 미군 항공모함 호넷에서 출격한 지미 두리틀 중령의 B-25 공습과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된 5월 7~8일 벌어진 남태평양의 산호해 해전에서 미 항모에 의해서 경항모 쇼호를 잃고 최신항모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손상되면서 파죽지세이던 남방 진군의 스톱으로 일 군부는 충격에 빠진다. 

미 항공모함의 위력을 체험한 야마모토 제독은 하루 빨리 미군전력의 핵심인 항공모함을 섬멸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야마모토는 우선 일본군과 접한 미군의 최전방 항공기지 미드웨이를 칠 계획을 군부로부터 승인받는다. 그는 이곳을 점령한 뒤, 일본의 최전방 항공기지로 삼아 미국의 일본 본토 공격을 저지하고 미군 항모를 바다로 끌어내어 타격할 생각을 한 것이다. 사실상 이 작전은 미군의 두리틀 공습 이전에 세워진 계획이었으나 남방진격에 밀렸다가 두리틀 공습과 산호해 해전을 겪고 난 뒤 전격적으로 수용되었다.


● 창대했던 일본 기동부대의 출전과 전력

5월 27일, 나구모 제독의 함대가 순양함 나가라호를 선두로 히로시마 남쪽 하시라지마에서 출발한다. 항공모함 4척, 전함 2척, 순양함 3척으로 구성된 제 1기동부대엔 2개의 항공전대가 속해있었다. 항공기는 272기였다. 1항공전대의 3만6,500톤 아카기엔 제로기 21기, 99식 함상폭격기 21기, 97식 함상공격기 21기가 탑재되었다. 3만8,200톤 덩치의 가가엔 제로기 21기, 99식 함폭 21기, 97식 함공 30기가 날개를 접었다. 제 2항공전대의 1만7,300톤 나가는 히류엔 제로기 21기, 99식 함폭 21기, 97식 함공 21기가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고 1만5,900톤의 소류엔 제로기 21기, 99식 함폭 21기, 97식 함공 21기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틀 뒤인 5월 29일에 거대 전함 야마토호에 기함의 깃발이 올랐다. 총사령관 야마모토 제독의 승선을 알리는 깃발이었다. 본대는 전함 2척과 항공모함 1척, 순양함 5척으로 이루어진 미드웨이 타격대와  중량급 순양함 4척으로 이루어진 근접지원대를 끌고, 수상기 항공모함 2척,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정단으로 이루어진 점령부대, 미드웨이 전방에 배치된 잠수함 22척이 가세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함대는 공격 예정일인 6월 4일까지 작전 지역에 집결하기로 하고 진주만 때처럼 무전을 끈 채로 은밀한 항해에 들어간다. 분위기는 진주만 때와는 달리 잇따른 승전에 자만에 찬 들뜬 모습이었다.


● 미약했던 미군의 항모전단

미군은 암호 해독을 통해서 일본군의 목표가 미드웨이인 것을 파악하고 만반의 준비에 들어갔다.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가 동원할 수 있는 항모는 제16 기동부대(TF-16)의‘엔터프라이즈’와 ‘호넷’, 그리고 산호해에서 심각한 내상을 입었으나 응급복구 된 제17 기동부대(TF-17)의 ‘요크타운’등 3척이었다. 일본군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

그러나 천만 다행으로 미군에게는 움직이지 않는 붙박이 항공모함이 한 척 있었다. 다름 아닌 미드웨이 섬의 활주로가 그것. 사실상 미드웨이 섬은 불침항모였다. 여기에 레이더라는 천리안과 암호해독이라는 비밀 병기가 있었다. 더욱이 미군의 항공모함들은 산호해에서 학습된 교훈을 통해 전투 중에 피해를 견뎌내는 내성과 진주만의 복수를 다짐하는 결전의 의지로 똘똘 뭉쳐 있었다. 제 16기동부대는 스프루언스 제독이 제 17기동부대는 프랭크 플레처 제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엔터프라이즈 호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요크타운에서 카운터펀치를 갈며 이륙 명령을 기다린 함재기는 모두 233기였고 붙박이 항모 미드웨이에는 브루스터 F2A 버팔로 전투기 26대, SB2U 빈디게이터와 더글러스 SBD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50대, 그러먼 F4F 와일드캣, 보잉 B-17 플라잉포트레스, B-26 머로더 등 100기 이상의 보강된 항공기들이 일본군만 나타나기를 벼르면서 출격 의 숨길을 고르고 있었다.

미군 제 16 기동부대의 엔터프라이즈는 요크타운 급의 두 번째 항공모함으로 2만5,500톤에 90기 가량의 항공기를 탑재하고 최고 32.5노트를 낼 수 있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의 자랑 아카기, 가가, 히류, 소류를 격침시키고도 태평양전쟁 내내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본군으로부터 ‘그레이 고스트’라는 별명을 얻은 전설의 항공모함이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뇌격기, 미드웨이 섬 (왼쪽부터)


● 결전의 날이 밝다

미드웨이 해전은 소리 없이 출발했지만 이미 행보를 들킨 일본군과 은밀하게 일본 항모를 찾으면서 미리 기다린 미군과의 한판 승부였다.

승부의 시작은 정찰에서부터 가려졌다. 일본군에 비해서 미군은 압도적으로 많은 30대가 넘는 정찰기를 육상과 해상에서 띄우고 미드웨이 근해를 촘촘하게 뒤졌으나 일본군은 항모와 순양함 등에서 제한적인 숫자의 정찰기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6월 3일 오전 일본 함대가 미드웨이 침공대와 수송선단이 해군 소위 잭 리드가 모는 카탈리나 비행정에게 먼저 꼬리를 잡힌다. 그날 오후에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폭격기가 고공 폭격을 하고 카탈리나가 수면에 착륙해서 어뢰공격을 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윽고 6월 4일이 되면서 새벽 1시 반 일본군 조종사들은 야참인지 아침인지 모를, 밥과 된장국과 채소절임에 더운 청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같은 시각, 미 항모에서도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스테이크와 계란으로 미 파일럿들 역시 이른 아침을 마쳤다.

소류, 불타는 히류, 아카기 (왼쪽부터 차례로)
먼저 새벽 4시 45분 일본 측 공격기가 날아오른다. 기함 아카기와 가가, 소류와 히류에서 총 108대의 항공기가 일제히 미드웨이로 향했다. 도모나가 대위가 지휘한 이 공격대는 한 시간 뒤 미군의 카탈리나기들에 발견되었고 미드웨이에서는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본격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한편 5시 57분경 일본군 미드웨이 공격대를 발견했던 미군 카탈리나 비행정은 구름 속으로 도주하다가 일본항모들을 찾아낸다. 곧바로 이정보는 16, 17 기동부대에 타전된다. 누가 먼저 항모를 발견하느냐의 경쟁에서 미군이 한발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간발의 차이가 운명을 결정한다.

6시 15분 경 미드웨이 상공. 매복하던 미 해병대 소속 버펄로 전투기와 와일드캣 전투기 27대가 일본군 공격대를 덮쳤으나 낡고 속력이 느린 미국 전투기로서는 제로기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뚱뚱한 몸매의 미군 전투기들은 속속 격추돼, 2기 외엔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전멸되다시피 했다.

한편 미드웨이의 하늘이 일본기 차지가 됐지만 이번에는 진주만과 달랐다. 비행기들은 이미 대부분 치워진 뒤였고 미군의 지상포대는 격렬하게 저항을 했다. 별 소득이 없이 1차 공격대가 귀환에 들어갔다.

그 시각 7시 5분경 미드웨이 동북방 200km해역에서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던 미국의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함재기 119대가 갑판을 박차고 이륙한다.

그러는 사이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미군기들이 처음으로 일본 항모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기의 호위도 없이 마구 출격해버린 이들은 6대의 TBF 신형 어벤저 뇌격기와 육군 항공대 B-26 머로더 경폭격기 4대였으나 이내 일 항모를 호위하던 제로전투기의 밥이 된다.

8시 가까이 되어서 로프튼 헨더슨 소령이 이끄는 미드웨이 해병항공대의 16대의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역시 전투기 호위도 없이 히류에 돌진했으나 아카기, 히류 그리고 전함 기리시마 등 주위 함정에서 쏴대는 대공 포화와 제로기 편대에 의해 10대가 격추되고 6대만 겨우 귀환했다. 헨더슨 소령은 피탄 되자 항모 가가에 충돌을 시도했으나 바다에 추락, 전사한다.

8시 10분경엔 일본의 정찰기도 미군 함대를 발견한다. 뒤이어 8시 20분에 일본의 정찰기가 다시 미 항모 발견 보고를 한다. 그사이에 B-17 폭격기 편대가 일본군 항모에 위에서 고공 폭격을 했지만 역시 헛발질로 끝났다. 그러나 몇 차례의 미드웨이 항공대의 공격에 노출된 일 항모들을 회피 기동을 하느라 시간을 소비, 함상기들을 발함시킬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8시 25분경 도모나가 대위가 이끄는 미드웨이 1차 공격대가 귀환한다. 이미 4시간 가량을 하늘에 떠 있었던 터라 연료가 바닥이 난 전투기들은 착함에 분초를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일 항모의 갑판에는 공격용폭탄을 장착하고 출격을 기다리던 함상공격기들이 있었다. 일 항모 지휘부는 고민 끝에 전투기들을 갑판 아래 격납고로 내리곤 부랴부랴 8시 37분부터 착함을 시킨다. 9시 15분이 되어서야 간신히 전체 공격대가 갑판에 내려앉았다. 그동안 기존의 공격기들은 육상공격용 폭탄을 제거하고 항공모함 공격을 위해서 어뢰 교체에 들어갔고 미드웨이 귀환 공격기들은 연료재공급과 재무장에 들어갔다. 일 항모의 분위기는 아수라장이었다.

마침내 9시 10분 경 2시간 전에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의 갑판에서 이륙한 미군의 뇌격기들 이 나구모의 함대를 발견했고 일본 측 항공모함에서는 10분 뒤 미군 비행기의 접근을 알아차린다.

9시 25분경부터 호넷에서 발진 한 제8뇌격대 15대가 호위기도 없이 성급한 접근했지만 상공에서 초계비행을 하던 일본기에 격추되고 15분 뒤인 9시 40분에 도착한 엔터프라이즈 발 제6뇌격대도 마찬가지 전철을 밟는다.

그로부터 5분 뒤인 9시 45분경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 편대가 항모전단과 한참 떨어진 해상에서 가느다란 항적을 발견했다. 미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쫓다가 일 항모 함대로 복귀하는 구축함 아라시가 남긴 항적이었다. 엔터프라이즈의 돈틀레스 편대는 아라시의 뒤를 따랐다. 이 급강하 편대에 의해서 제대로 된 일 항모 공격이 이루어졌으니 아라시가 죽음의 길 안내자 역할을 한 것이다.

한편 10시 정각에 요크타운에서 이륙한 제3뇌격기 부대가 세 번째로 일 항모 공격에 들어갔으나 역시 초계기와 대공화력 앞에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그러나 이때 미군에겐 중요한 기회가 생긴다. 뇌격기의 잔매를 막느라 일본군은 초계를 남쪽 하늘로 옮겼고 항공모함의 위를 텅 비게 만든 것이다. 뇌격기의 잽으로 고공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항공모함에서는 출격이 늦추어진 사이에 시각은 10시 20분을 넘기고 있었다.       


● 운명의 5분, 도둑 같이 다가 온 심판

수리중인 요크타운, 공격받는 요크타운 (왼쪽부터)
마침내 10시 25분. 운명의 5분이 시작되었다. 엔터프라이즈 발 급강하 폭격대와 요크타운 발 급강하 폭격대가 죽음의 그림자를 싣고 아카기, 가가, 소류의 상공을 덮친 것이다. 갑판엔 출격을 기다리는 함상기들이 즐비했고 미군 파일럿의 눈엔 갑판에 빨간 일장기의 원을 그린 일 항모들이 마치 표적처럼 각인되었다. 덩치가 큰 가가가 확 눈에 들어왔다. 가가의 견시가 ‘급강하’를 외치고 24노트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필사적으로 회피 기동을 하였지만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는 뇌격기와는 달랐다. 28대의 폭격기가 준비한 폭탄은 50발에 달했다. 공식적으로 모두 4발의 폭탄이 명중되었다지만 연료 창고에 맞아 대형 폭발을, 아일랜드가 날아가면서 지휘부가 몰살 하는 등 너무나 혼란해 최대 12발이 명중되었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가가는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사이에 나구모 제독이 탑승하고 있던 아카기는 돈틀레스가 투하한 450㎏ 폭탄 한 발에 숨통이 끊어진다. 미군의 고폭탄은 중앙 승강기의 후방 왼쪽모서리에 명중하여 승강기를 뚫고 들어가 격납 공간에서 폭발했다. 이곳엔 항공유를 만재하고 850㎏ 어뢰를 매단 97식 함공이 꽉 차 있었고 주변에는 800㎏짜리 대형 폭탄이 가득했다. 무시무시한 유폭이 시작되었다. 설상가상 얻어맞은 지근탄으로 조함능력이 상실된다. 제국의 자랑 아카기는 불타는 관으로 변했다.

소류도 자신의 머리 위에 온 죽음의 사신을 알아차린 것은 공습 불과 1분전인 10시 24분이었다. 전속으로 좌회전을 하면 회피기동을 하는 사이에 대공포의 계산 값이 나와서 대공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으나 이미 늦었다. 돈틀레스에서 투하한 450㎏ 폭탄은 아일랜드 전면에 있는 승강기를 타격했다. 잠시 후 다시 450㎏폭탄이 함의 중앙을 뚫고 들어갔고 보일러실을 날려버렸다. 또 한방이 후방 함체에 명중, 격납갑판 내를 쓸어버린다. 여기엔 99식 함폭이 항공유를 만재하고 있었고 250㎏ 철갑탄과 242㎏ 고폭탄이 쌓여 있었다. 손쓸 도리 없이 무서운 폭발이 이어졌고 소류의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10시 57분경 유일하게 살아남은 히류가 반격에 나선다. 고바야시 미치오 대위는 급강하 폭격기 18대와 호위 전투기 6대를 이끌고 미국 항공모함을 찾는다. 그러나 일본 비행기들의 접근을 레이더로 알아낸 요크타운은 즉시 전투기 출격과 함께 급강하 폭격기들은 다른 배로 보내고 대공 전투를 준비했다. 요크타운에 접근하기도 전에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12시 11분경 방어막을 뚫고 일본군 급강하 폭격기들은 15분 동안 요크타운에 3발의 폭탄을 명중시키며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요크타운은 2시간 만에 기관실 비행갑판을 수리하고 18노트의 속력으로 다시금 공격을 위해 불사조처럼 항진한다.

12시 45분경 이번엔 미드웨이 1차 공격대를 지휘했던 도모나가 대위의 공격대가 히류의 갑판을 차고 출격했다. 요크타운에 접근하기도 전에 요크타운과 엔터프라이즈 함재기와의 치열한 공중전에 속속 격추되면서도 어뢰 2발을 요크타운에 명중시킨다. 폭탄에 이은 어뢰 2발로 그녀는 회생불능상태에 빠졌다. 퇴함명령이 내려졌고 왼쪽으로 26도 기울어진 요크타운은 예인 작업이 시작되기 전, 일본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6월 7일 아침에 침몰했다.

한편 도모나가 공격대가 요크타운에서 물러갈 즈음, 미군 정찰기가 히류를 발견했다. 오후 4시에 엔터프라이즈에서 돈틀레스 급강하 폭격기 20대, 호넷에서 16대가 이륙했다.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20대 중 10대는 원래 요크타운의 함재기였다. 요크타운의 복수를 위하여!!

도모나가 공격기들이 히류에 착함한 것은 4시 30분이었다. 곧이어 오후 5시,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히류에 날아들었다. 필사적으로 히류의 초계기들이 막고 나섰으나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였다. 폭탄 4발이 갑판에 명중했고, 히류는 폭발과 함께 갑판이 날아가면서 함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이날 소류가 오후 7시 13분 제일 먼저 가라앉았고 12분 뒤 가가가 침몰한다. 유령선처럼 해상을 떠돌던 아카기는 다음날 새벽 새벽 4시 55분 자침 처리되고 히류도 5시 10분, 같은 운명에 처한다.

미드웨이 해전이 벌어진 6월 4일~7일 사이에 미군은 항모 1척 비행기 147대, 병력 307명을 잃었고 일본은 주력 항모 4척과 대형 수송선, 비행기 272대와 2,500명의 병력을 잃었다. 미국으로서는 승리의 해전이며 일본으로서는 패전의 시작이었다.

일본군 10만7,000톤 미군 2만5,500톤, 총합 13만3,400톤에 달하는 항공모함 5척이 수장된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은 한발 앞선 정보와 우세한 정찰력을 무기로 훨씬 다양한 공습을 할 수 있었고 일본해군은 부정확한 정보에 의존, 멋모르고 섶 지고 불 속에 뛰어든 형국으로 해전을 치렀다. 거기다가 일본해군은 속도도 느리고 낡은 미군뇌격기들의 잽을 피하느라 고공 침투 급강하 폭격기의 한방을 대비하지 못했고 지휘관의 우왕좌왕이 겹치면서 파국을 맞았다.

물론 미군기들은 교전 경험이 일천해서 지휘계통의 혼선, 기체 결함 등 아찔한 상황이 속출했지만 앞선 정보와 파일럿들과 일선 지휘관들의 순간의 결정에 충실함으로써 승리를 일구어내었다. 미드웨이해전에서 미군의 승리는 우연이 아닌 어찌 보면 지피지기의 당연한 결과였고 일본에겐 필패인 동시에 악몽의 시작, 대재앙의 날이었다.     

SEA&강승철기자ds5b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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