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 저작권 사냥꾼' 표적 된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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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 A대학교 직원 B 씨는 지난해 11월 한 통의 이메일을 받고 화들짝 놀랐다. W법무법인이 보내온 이메일에는 A대학 재학생들이 만든 저작물이 폰트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의심되니 해당 폰트의 정품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적혀 있었다.

대학신문 지면, SNS에 올라온 영상물 자막, 학과 게시판의 안내 푯말까지 10여 쪽 분량의 저작권 위반 의심사례도 첨부돼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급기야 A대학교 총장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는 통보장이 우편으로 날아들었다.

C대학교도 같은 시기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문서와 영상물 자막,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 등이 폰트 저작권을 위반했으니 합의금을 내든지 라이선스(사용권)를 구매하라는 것이었다. 이 대학은 이미 2년 전 똑같은 일로 '2차 라이선스(영상콘텐츠용)'를 한 차례 구입한 적이 있었다. 이번엔 문서와 웹페이지에 대해 '추가 위반' 통지가 날아든 것. 결국 C대학교는 울며 겨자먹기로 1천만 원 상당의 '1차 라이선스(문서용)'를 또 다시 구매하기로 했다.

글꼴 저작권 위반했다며
부산 모 대학에 소송 통보
대학신문·홈피·게시판 등
위반 빌미 사용권도 강매

대학홍보협 공동구매 나서
일부 대학은 법적 대응 준비


최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대학들이 '폰트 저작권 사냥꾼'의 표적이 되고 있다. 폰트 업체의 위임을 받아 일반인을 상대로 합의금을 뜯어내던 법무법인들이 수법을 바꿔, 대학생들의 불법 폰트 사용을 빌미로 해당 대학 측에 폰트 라이선스를 강매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호남지역 대학을 시작으로 부산과 경남, 충청지역 등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이 같은 폰트 저작권 '사냥감'이 됐다.

사태가 확산되자 최근 한국대학홍보협의회가 직접 해당 폰트 업체와 협상을 벌여 라이선스 '공동구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재학생 기준 1만 명 이상 대학은 1천700만 원(A군), 5천 명 이상은 1천400만 원(B군), 5천 명 미만은 1천만 원(C군)을 내고 폰트의 1·2차 라이선스를 영구 취득하는 조건이다.

부산지역 몇 개 대학을 비롯해 전국 수십 개 대학이 이미 공동구매를 마쳤다. 하지만 일부 대학은 폰트 강매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소송까지 준비 중이다.

A대학교 관계자는 "재학생들이 영리 목적이 아니라 과제물과 단체 활동 등에 사용한 폰트를 놓고 업체 측이 저작권 위반을 들먹이며 고가의 라이선스 강매를 요구하고 있다"며 "자문 변호사와 논의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저작권법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는 비영리단체 오픈넷 남희섭 이사는 "저작권 권리 행사를 핑계로 물건 강매하는 법파라치들의 행태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어 몇몇 대학들이 공동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를 한 상태"라며 "저작권 보호 차원이 아니라 수익의 일환으로 권리자와 변호사가 결탁해 '권리 남용'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폰트

문서작성 프로그램이나 웹페이지에서 사용하는 크기와 모양이 같은 한 벌의 글꼴(서체). 대부분 민간업체에서 개발한 유료 폰트이며, 저작권 문제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무료 폰트도 일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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