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권하는 사회, 방사선 권하는 사회] ⑤ 무분별한 CT 촬영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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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고지 의무 법제화' 의료법 개정… 적극 참여 유도해야

일본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의 게이치 아카하네(왼쪽) 박사가 의료 방사선량 측정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여진 기자

CT(전산화단층촬영)와 PET CT(양전자방출 전산화단층촬영) 남용을 막을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정부에서는 의료 방사선과 관련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현장에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단순 '권고'만으로는 의료 방사선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책 많기는 한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진단용 방사선 노출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환자의 방사선 피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올 초부터 '국민 개인별 맞춤형 방사선 안전관리'를 단계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의료 방사선 관리 다양한 정책에도
수익 압박·의사들 인식도 부정적
현장 적용 안 돼 무용지물로 방치
국민 안전 가이드라인 나와야


현재 구축 중인 '환자 방사선 피폭량 기록관리 시스템'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에서 생성된 방사선 정보를 유효선량으로 변환해 환자 개인별로 기록·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내년부터는 일반 엑스레이와 치과 엑스레이 촬영도 시스템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달 말 의료진이 방사선 치료 때 발생하는 방사선량을 줄이는 방법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한 '방사선 치료 관련 영상촬영에서의 선량 저감화 지침'을 발간해 배포했다. 지침은 △방사선 치료의 영상 이용과 선량관리 필요성 △영상장치별 선량 △영상촬영에서의 선량 저감화 및 최적화 방안 등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 방사선 치료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된 영상촬영 장비 현황 및 촬영조건을 바탕으로 4가지 장비별 영상선량 평가결과를 제시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한 게 특징이다.

식약처 김형수 방사선안전과장은 "의료 방사선 안전관리에 도움이 되는 시스템과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보급하고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일선에선 이 같은 정책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 부산의 한 의사는 "지침이 발간돼 배포된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이를 현장에서 적용해보려는 의사는 주변에 거의 없다"며 고 말했다. 또 다른 의사도 "의료 방사선 위험성 여부를 두고 의사들 사이에서 의견차가 크기 때문에 방사선 피폭량 기록관리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들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밝혔다.

■의사들의 인식 전환이 우선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 거의 적용되지 않는 것은 모두 권고에 그치기 때문이다. 강제성이 없다 보니 환자 입장 대신 병원의 편의에 따라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 한 의료전문가는 "의사들 상당수는 환자가 원하면 CT나 PET CT를 찍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병원의 수익창출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정부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인식 전환이 우선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의사들 상당수는 '의료 방사선은 안전하다'거나 '원전 피폭과 달리 의료 방사선은 상대적으로 저선량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100mSv(밀리시버트) 이하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가 대표적인 예다. 이 주장이 우리나라에서는 상당 기간 지속되고 있지만, 영국 등 외국에서는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방사선에 피폭돼 몇 주 내 증상이 나타나는 급성에는 역치(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 세기)가 있지만, 의료 방사선에서는 별도의 역치가 없다'는 연구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다.

또 의료 방사선과 관련해 학습기회가 많아지면 의사들도 의료 방사선의 위험성을 인지하게 되고,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뿐만 아니라 의학방사선학회, 방사선기술학회, 의학물리학회 등이 주축이 된 의료피폭연구 정보네트워크 등을 통해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한림대 주영수 산업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의료 방사선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의사는 1%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의사들이 의료 방사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다면 환자나 가족이 CT나 PET CT 촬영을 원하더라도 사전에 의료 방사선에 대해 충분한 설명해 줌으로써 환자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법 개정 등 절실

의료 방사선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의사의 인식 전환과 함께 의료법 개정도 절실하다. 지금은 정부의 대부분 정책이 권고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지지만, 의료 방사선 피폭에 대한 고지의무를 법제화하면 의사들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것.

또 환자 개개인의 누적 피폭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환자의 알 권리 및 의료기관의 정보 공유를 위한 '의료 방사선 안전관리법'을 만들면 어느 병원에서나 환자정보를 공유하고 불필요한 의료 방사선을 줄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NPDD(국가 환자 방사선량 데이터베이스)에는 의사들 대부분이 참여하고 있다. NPDD의 성공적인 정착은 공공의료 체계에 따른 국가적 차원의 관리가 용이한 부분도 있지만, 의료 방사선에 대한 위험성에 모두 공감하고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진 덕분이 주효했다. 실제로 NPDD 덕분에 영국은 최근 5년간 의료 방사선량을 30%나 줄이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시민방사능센터 이윤근 센터장은 "법적 규제가 없는 미국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의료 방사선 피폭량이 상당히 많다"며 "현재 정부에서 시행 중인 시스템들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의료법을 제·개정해 병원과 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 방사선과 관련한 전반적인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수다. 이 센터장은 "시민들뿐만 아니라 의료계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선 국민의 안전을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고 시스템이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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