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권하는 사회, 방사선 권하는 사회] ④ 일본의 시민 중심 감시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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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 히로시마 '의료 방사선 남용 막기' 병원·시민이 앞장

일본 히로시마 공립병원에서 아오키 가쓰아키 검진센터장과 시노부 하타노 방사선과 부장 등이 최근 도입한 저선량 CT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일본은 2012년 기준 인구 100만 명당 CT(전산화단층촬영) 수가 101.3대로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다를 자랑한다. 의료보험 체계도 우리와 유사해 의료 방사선 남용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인들은 의료 방사선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지역에서 의료 방사선 남용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저선량 CT로 방사선 저감 노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투하된 원자폭탄의 기억과 상처가 아직도 진한 히로시마는 의료 방사선에 대한 관심 역시 높다.

"정부 대처 미온적이라면
병원·의사라도 적극 나서자"
저선량 CT 도입 관심 고조

의학자 등 시민단체 참여
피폭 위험성 알리기 맹활약


히로시마에 자리한 40년 전통의 히로시마 공립병원이 대표적이다. 진료소에서 출발해 지난 9월 새 건물에 입주할 만큼 덩치가 커진 이 병원은 조합원 4만 명 규모를 자랑하는 의료생협이다. 인근 주민 20만 명 정도가 이용 중이다. 원폭 피해자의 상당수가 조합원으로 가입된 히로시마 공립병원은 저선량 CT 촬영과 의료 방사선 안내로 유명하다.

원폭 피해자 2세로 2002년부터 5년간 이 병원 원장을 지내고 현재 병원 검진센터장을 맡고 있는 아오키 가쓰아키 일본 반핵의사회 상임간사는 CT의 장점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그는 "9년 전 처음 도입된 PET CT(양전자방출 전산화단층촬영)로 폐암을 조기 발견해 암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본인의 경험을 소개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CT 촬영은 경계했다. 아오키 간사는 "최근 일본 정부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폭량은 CT 촬영을 하는 것보다 더 낮은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CT 촬영으로 인한 방사선 피폭량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라며 "일본 역시 단순 검진 목적으로 CT를 무분별하게 촬영하는 사례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원폭 경험이 있는 히로시마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의료 방사선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히로시마 공립병원의 경우 아이들에게는 가능한 한 MRI(자기공명영상)를 찍도록 권하고 있으며, CT와 PET CT의 방사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아예 저선량 CT를 도입했다는 것.

히로시마 공립병원 시노부 하타노 방사선과 부장은 "저선량 CT의 방사선량은 일반 CT의 10~20% 수준으로, 흉부 CT의 경우 1.4mSv(밀리시버트) 미만에 불과하다"며 "선량이 적지만 특수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반 CT보다 더 정교한 검사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아오키 간사는 "정부가 방사선 관리에 미온적이라면 병원이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시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의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다카기학교 등 시민단체 적극 활동

의료 방사선의 피해를 알리는 시민단체도 있다. 의료 방사선에 있어선 도쿄의 다카기학교가 독보적이다.

이 학교는 1997년 핵의 위험성을 세계에 알리고 시민 입장에서 활동한 독립 과학자로 인정받아 이른바 '대안 노벨상'으로 알려진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한 다카기 진자부로 박사가 시민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세운 시민학교다.

2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다카기학교는 의료피폭문제 연구그룹과 원자력문제 연구그룹, 화학물질문제 연구그룹 등 다양한 소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특히 의료피폭문제 연구그룹의 경우 일본의 심각한 의료 피폭을 줄이기 위해 의학·생물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시민들과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피폭선량 기록수첩과 의료피폭문제를 해설한 책자와 출장 강의는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NIRS)에서 근무하다가 은퇴 후 다카기학교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강좌를 열고 있는 사키야마 히사코 박사는 "끊임없이 강의를 열고 자료를 배포한 결과 시민들도 CT 및 PET CT 방사선의 위험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며 "시민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또 다른 시민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 원자력자료정보실(CNIC)도 주목할 만하다. 1975년 발족한 원자력자료정보실은 원자력과 관련한 산업 전반에 대해 시민 입장에서 원자력 이용의 위험성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조사·연구하고, 그 결과를 인터넷과 팸플릿, 잡지 등의 형태로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서방 언론에 공개된 누출 방사선량을 공개하고 원전의 위험성을 적극 알려 시민들로부터 큰 공감대를 얻고 있다.

반 히데유키 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는 "시민들이 방사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도록 시민단체들이 끊임없이 이슈를 제공하고, 연구결과를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도쿄·히로시마/

글·사진=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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