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권하는 사회, 방사선 권하는 사회] ② CT 왜 위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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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잦을수록 유방·갑상선암 위험… 병원은 알고도 모른 척

CT 및 PET CT 촬영이 건강진단을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남용되면서 이용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양의 의료 방사선에 피폭되고 있다. 사진은 복부 CT 촬영 모습으로 기사와는 무관함. 연합뉴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전사고 이후 확산된 방사선에 대한 관심은 최근 고리원전과 인근 주민의 암 발병 연관성을 인정한 국내 첫 판결로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원전 관련 방사선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네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방사선을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 방사선'이다. 의료 방사선은 선택 가능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른 방사선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방사선 피폭량

주변 환경으로부터 피폭되는 한국인의 총 방사선량은 연간 3.73mSv(밀리시버트)로 세계 평균(3.01mSv)보다 다소 높은 편이다. 방사선 피폭 경로는 라돈가스 36%, 지각 감마 26%, 의료 방사선 20%, 음식 섭취 11%, 우주 방사선 7% 등이다.

복부 CT, 연간 피폭 기준 10배
PET  CT, 허용치 14~25년 분량
장비 노후화 재촬영 사례 빈번
의료종사자도 무방비 노출

라돈가스와 지각 감마, 음식 섭취, 우주 방사선은 자연 방사선으로 불린다. 자연 방사선은 말 그대로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방사선으로 물이나 토양, 공기 등 천연방사성동위원소로부터 나오는 방사선을 뜻한다. 인공 방사선과 대비되는 자연 방사선은 발생 자체를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자연 방사선 총피폭량은 3.0mSv 정도다.

이에 반해 의료 방사선은 의료행위에서 의도적으로 노출되는 방사선이다. 흔히 많이 접하는 엑스레이와 CT(전산화단층촬영), PET CT(양전자방출 전산화단층촬영) 등이 의료 방사선에 해당된다.

의료 방사선 중 CT나 PET CT의 피폭량은 상당한 수준이다. 어느 부위를 찍느냐에 따라 피폭량도 큰 차이를 보인다. 머리 CT는 2mSv 수준이지만, 흉부 CT는 8mSv, 복부 CT는 10mSv에 이른다. 복부의 경우 일반인의 연간 피폭 허용기준(1mSv)의 10배에 달한다.

최근 촬영빈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PET CT는 적게는 14mSv에서 많게는 25mSv의 방사선 피폭이 인체 내부에서 발생한다. 1년에 한 차례 PET CT를 받아도 일반인에 허용된 피폭량의 14~25년치 정도를 한꺼번에 허용하는 셈이다.

성균관대 김수근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매년, 혹은 2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을 때 CT나 PET CT를 추가하면 피폭량이 50mSv를 너끈히 넘기게 된다. 방사선 피폭량 측면에서 보면 1천만 원이 넘는 숙박검진의 진단이 과연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피해사례 연구 결과 줄줄이

이처럼 의도적으로 노출되는 의료 방사선은 암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에서는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량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논란이 많다. 하지만 CT 촬영 등으로 오히려 병을 키우는 결과가 해외 연구사례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유방암이 대표적이다. 유방조직은 방사선에 노출됐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체부위이기도 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가 2000~2010년 CT 검사 등을 받은 여성 25만 명을 분석한 결과, 흉부와 심장 등을 촬영할 때 방사선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방암에 걸릴 위험은 젊은 여성일수록, 검사를 자주 받을수록 커졌다. 유방암 위험요인이 없는 15세 소녀가 CT 검사 등을 받으면 10년 후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배로 커지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는 '50대 미만 여성은 유방암 X선 검사를 할 필요가 없고, 50~74세 여성도 2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도록 한다'는 지침을 내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40세 이후 모든 여성이 2년에 한 번씩 유방 X선 촬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는 40세 이전 여성 상당수가 종합검진 때 유방 CT를 찍기도 한다. 주부 윤정인(35) 씨는 "남편 회사에서 배우자를 대상으로 종합검진 비용을 지원해 별 생각없이 유방 CT를 찍었다"며 "방사선 영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갑상선암도 마찬가지. 미국 로체스터대 메디컬센터는 1953~1987년 어렸을 때 흉선비대로 방사선 치료를 받은 1천308명과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은 1천768명을 대상으로 2004~2008년 다시 조사한 결과, 머리·목·흉부 CT를 찍거나 상체부위 방사선 치료를 받은 사람은 평생 갑상선암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이윤근 소장은 "PET CT 검사를 받으면 20대에서는 10만 명당 남성 328명, 여성 362명에게서 암이 발생한다는 2009년 해외 연구보고도 있다"며 "여성과 어린이는 특히 방사선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방사선 노출 위험 축소·왜곡 일쑤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CT의 과도한 방사선 노출 위험을 축소·왜곡하기에 급급하다. 국민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의료 방사선을 허용하는 셈이다.

실제로 감사원이 최근 공개한 '방사선 안전관리실태' 감사결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9개 대학병원 등은 암 진단용 CT의 일종인 PET CT 촬영에 대한 안내문과 주의사항을 배포하면서 방사선 피폭량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들은 'PET-CT로 각종 암을 발견할 수 있다'며 촬영효과만 홍보하거나 방사선 피폭량이 미미하다고 사실을 왜곡한다.

의료종사자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보건복지부의 규정 부실로 전국 국립병원 16곳의 방사선 발생장치 설치 수술실에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 1천300여 명이 안전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점도 감사원에서 지적됐다.

병원마다 나오는 방사선량 역시 천차만별이지만 이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07~2009년 125개 병원을 대상으로 촬영 부위별 방사선 피폭량을 조사한 결과, 장비 노후화 정도와 환자 체형, 촬영방식 등의 차이로 머리와 복부 CT는 각각 9배 차이를 보였다.

노후화된 고가 의료장비도 방사선 위험을 부추긴다.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촬영인데도 장비 노후화로 인해 재촬영 사례가 빈번해지는 것이다.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공개한 '고가 의료장비 제조연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CT와 PET 등 고가 의료장비 총 3천345대 중 10년 이상 장비는 788대(23.6%)에 달했다. CT의 경우 1천864대 중 25.7%인 479대, PET는 206대 가운데 15.1%인 31대가 노후 장비에 해당됐다. CT는 4대 중 1대, PET CT는 5대 중 1대가 10년 이상 된 낡은 장비인 셈이다.

최근에는 안전성 검사도 받지 않은 10~15년 된 중고 CT 등 40여 대를 재조립해 4~5년 내 제품으로 둔갑시킨 뒤 국내 병·의원에 납품한 수입업자가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남윤 의원은 "노후 장비는 영상품질이 떨어지고 불필요한 중복 촬영을 유발해 국민건강을 위협한다"며 "장비 품질관리제도나 사용연한 및 사용량을 감안한 다양한 수가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는 해외 사례를 적극 참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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