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리가 지도를 그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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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 문화부 부장

부산에 문화공간이 이렇게 많았나?

‘新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 시리즈 첫 회 ‘미술관 옆 화랑’ 기사가 나간 뒤 다들 “우리 도시에 전시장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했다. 지난 1~2년 새 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리며 새 갤러리 오픈 소식이 자주 들린다 생각했지만, 직접 확인한 전시공간은 정말 많았다. 평소 모아 둔 전시장 정보에 전시 안내 웹사이트를 뒤지고 네이버와 구글을 탐색하고. 거리뷰 기술까지 동원해서 찾은 전시공간 리스트만 270곳이 넘었다. 다음으로는 리스트 정리와 확인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 소식이 뜸하거나 새로 발견한 곳은 전화를 돌리고, 전화번호를 모르는 곳은 홈페이지나 SNS를 뒤졌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발품도 팔았다. 그렇게 220여 곳을 가려 내 구별로 지도를 그렸다.

13년 만에 그리는 신문화지리지
분야별 지도 그리며 변화상 확인
완성본 모으면 새로운 통찰 기대
부산문화예술 새 지도 시작 되길

다른 분야를 취재하는 신문화지리지 특별취재팀 동료의 모습도 딱히 다르지 않다. 새로운 정보를 추적하고 시간이 날 때 현장을 찾고, 리스트를 어떻게 정리해서 독자에게 보여 줘야 할지 고민한다. 요즘은 복합문화공간 형태의 장소가 많아 해당 공간이 어떤 기능을 하는 곳인지 확인·분류하는 일도 쉽지 않다. 신문화지리지를 그린다는 말을 들은 문화계 한 인사가 “그거 개고생인데”라고 말한 뜻을 진심 이해할 정도가 되면 결과물이 나온다.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9명의 기자가 그리기 시작한 지역의 문화예술 지도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부산일보>는 그동안 ‘망미골목 문화르네상스’ ‘영도구-중구-기장군 문화벨트’ ‘수영강변 문화예술지도’ 등 지역별 문화예술지도를 몇 차례 그려왔다. 하지만 부산 전체를, 문화예술 전 분야를 아우르는 지도를 그리지는 못했다. 기자로서 욕심은 나지만 한두 명으로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문화재단의 제안과 지원으로 특별취재팀을 꾸리고, 2009년 첫 시리즈에 이어 13년 만에 다시 부산문화지리지를 그릴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도를 그려 보니 평소 취재 현장에서 분위기로 감지되던 것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미술의 경우 해운대에 집중됐던 전시공간이 부산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수영구는 해운대 다음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미술지구가 됐다. 부산 화랑가의 시작점인 중구도 부활하고 있다. 금정구, 부산진구, 영도구, 기장군, 서부산에도 새로운 공간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규모나 시설 면에서 ‘좋은 전시공간’의 해운대 쏠림 현상은 여전했다.

취재 과정에서 청년 작가들이 만든 새 공간도 발견했다. 또한 재개발로 이전하는 갤러리가 꽤 많음도 알게 됐다. 서구에 있던 한 갤러리 대표는 “겨우 지역에 자리를 잡아서 신진작가도 키우고 했는데, 재개발로 부산에서의 영업을 종료하고 김해로 이전한다”고 아쉬워했다. 코로나를 계기로 사무실 공간만 두고 대관 기획전을 진행한다는 한 갤러리 대표는 “좋은 기획전시를 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시리즈 2편 ‘우리 동네엔 어떤 발굴 유적이…’를 취재한 기자는 도시의 기억이 개발에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는 지금 우리가 사는 땅 아래에 어떤 유적이 있었고, 선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 주기 위해 표에 ‘○○아파트’처럼 현재의 구체적인 건물명을 넣었다고 했다. 과거라는 자양분 없이 현재와 미래를 그릴 수 없다. 우리가 지도를 그리는 이유는 지역 문화예술의 ‘계속성’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어디에선가 영화를 찍고 있는 도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두고 보도된 3편 ‘부산은 촬영 중’은 영화영상도시 부산의 ‘찐면모’를 확인시켰다. 취재 기자는 “변화의 큰 줄기를 잡고 존재하는 현상을 짚어 주는 것에 의미를 뒀다”면서도 “관에서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정책에 활용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2022년 부산 신문화지리지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복합문화공간, 음악, 연극, 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지도를 독자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완성된 지도를 모아 놓고 보면, 또 13년 전에 그렸던 지도와 비교해 보면 또 다른 생각이나 통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그리고 있는 지도가 또 다른 지도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1층에서 보는 시선이 다르고, 10층에서 보는 시선이 다르다.” 특별취재팀 한 선배의 말처럼 각 분야에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더 세부적인 지도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나온 지도들이 모이고 모이면 지역 문화예술의 새로운 길을 안내하는 ‘新부산문화예술지도’가 탄생하지 않을까?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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