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용 (주)리얼체크 비트코인뱅크 대표이사

블록체인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관련 기술 개발을 통하여 혁신적 시도를 해 왔다. 이더리움 채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기술을 개발했고,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안전하게 저장하는 커스터디 솔루션을 개발하여 해외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은 기업도 있다. 24시간 사람을 대신하여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봇과 수익률이 높은 투자자들의 거래를 카피하여 거래하는 프로그램, 기록된 정보의 위·변조 및 무결성 검증을 위한 일종의 디지털 내용증명센터 등 어느 나라도 시도해 보지 못한 블록체인의 선도적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기술들은 잠시나마 시장에서 선도적 기술로 인정받으며 서비스 또는 판매되었다.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 기술이라는 정부 발표 이후 시장의 판도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부산시는 정부로부터 블록체인규제자유특구 지원 사업으로 수백억 원을 지원받았다. 부산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여러 기업을 지원하며,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하는 등 산업 발전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정부는 규제특례 및 샌드박스 지정, 연구개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미 개발되어 서비스되는 블록체인의 혁신적 기술은 정부의 규제에 묶여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지원 제도는 새롭게 시도하는 블록체인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일 뿐, 이전 기술은 오히려 시장에서 퇴출을 유도하는 상충되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세계 시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에 내놓을 만한 이렇다 할 기술이나 서비스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암호화폐 채굴·저장 분야 등
세계적인 기술 개발로 혁신 선도

정부 지원, 신기술 연구 개발 집중
개발 완료된 서비스는 설 자리 잃어

시장 경쟁력 높은 기술 적극 발굴해
부산 대표하는 블록체인 기업 키워야


블록체인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은 오히려 창업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규제가 되었다. 이는 기술적 특수성을 고려한 다차원적 해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 결과다. 정부의 신규 블록체인 관련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시도했으나, 사업의 성공보다는 홍보에 그치는 결과물만 가져왔을 뿐, 정작 시민에게 돌아가는 기술적 가치나 이익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적인 IT정보통신 기업들의 최고경영자 대부분은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경영자들이다. 이렇듯 정보통신 분야의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특히 기술적인 전문성과 시장을 보는 유기적 혜안이 요구된다.

비트코인이 나오고 그로부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렇게도 블록체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미래를 떠들었지만, 기술적 가치의 중심에 서 있는 비트코인은 공식적으로 중요성과 필요성을 언급할 수 없는 키워드였다. 세계적인 IT기업이 비트코인 기술을 활용한다는 뉴스를 들어도 우리는 비트코인을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그 무엇으로 치부하였다.

혁신의 키워드인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에서 나왔으며, 블록체인의 위·변조 불가성을 얘기하면서 비트코인은 암묵적으로 금기시하는 단어로 여겼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 및 지자체 담당자는 물론 대학의 전문가조차 비트코인 키워드는 금기시되고 비트코인 대신 블록체인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해야만 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혁신과 혁명의 주체인 비트코인의 키워드가 필요한 자리는 무조건 블록체인이라는 키워드로 채워져야 하며, 블록체인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를 해야만 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블록체인 기술이 아니라 비트코인 기술이다.

다행스럽게도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에 대한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공공기관에서는 그토록 거부하던 비트코인이란 키워드를 ‘비트코인 기술 바로 알기’ 라는 주제로 행사를 진행하고, 대학은 비트코인 블록해쉬 활용 방법을 커리큘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고등학교에서는 특별 활동을 통해 비트코인의 기술적 가치와 활용에 대한 수업을 개설하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블록체인 개발 관련 정부 지원 사업에서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꼭 사용해야 한다는 단서가 있었는데, 이제는 퍼블릭 블록체인 활용도 지원 가능한 사업이 되었다. 심사위원들 또한 과거와 달리 비트코인 기술에 대한 명확한 문답이 오가는 등 전문성이 확보된 수준까지 이르렀다. 블록체인을 기술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던 부산시 또한 디지털자산거래소를 민자로 설립하기 위한 추진단을 꾸릴 정도로 시장의 상황을 읽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혁신적 기술 개발에 있어 시행착오는 겪을 수밖에 없지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구현할 수 없는 기술은 과감히 포기하고, 시장이 원하는 기술을 찾아 개발 투자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술을 찾아 지원했을 때, 부산을 빛나게 하는 블록체인 기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