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87. 순수한 원으로 전환된 선택된 사물, 김청정 ‘표본된 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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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정(1941~) 작가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학부 조각과와 계명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고, 신라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7년 서울 태인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동아국제미술전람회’(1968), ‘이후작가전’(1968), ‘제2회 AG전: 현실과 실현’(1971), ‘상파울로비엔날레’(1981), ‘공간의 본질과 관조의 거리’(1999), ‘1960-70년대 부산미술: 끝이 없는 시작’(2020) 등에 참여했다.

작가는 조형적 자유와 실험을 목적으로 결성된 ‘습지’, 부산의 첫 조각 동인인 ‘공간’ 등에서 활동했다. 조각뿐 아니라 회화, 판화, 라이트아트 등 다양한 표현 영역을 섭렵하며 부산현대미술 형성에 있어 중심 역할을 했다.

김청정은 “나의 작가적 이력에서 ‘이후작가전’ 출품작 3점 ‘탕아(蕩兒) 돌아오다’, ‘표본된 구체(球體)’, ‘나는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들에서 “지속적인 조형 성향의 기저인 환원 의식의 절제와 단순화와 자연 회귀, 사물과 장소성, 빛 에너지와의 유기적 관계 설정이 심화된다”라고 밝혔다.

작업 초기부터 시작된 다양한 사물에 대한 관심과 의미 확산, 서사적 제목에 함축된 심상의 반영 등은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이후작가전’ 출품작 중 하나인 ‘표본된 구체’(1968)는 당시 2점이 제작됐다. 출품된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른 하나는 부산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두 작품에 있어 제목과 형식, 그리고 사용된 재료의 종류는 같다. 하지만 탁구공의 수에 차이를 둠으로써 표본값 범위는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 소장된 ‘표본된 구체’(1968)는 길이를 측량하는 기본 도구인 30cm 플라스틱 자를 표본병의 중심축에 두고 자의 앞뒷면 양측에 탁구공 12개를 일렬로 마주 붙인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은 탁구공 10개를 마주 붙였다. 자와 탁구공은 표본병의 빈공간을 통해 ‘진공상태로 보존 중’인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탁구공은 공이라는 구체적 사물이 아니라 기본 단위인 ‘순수한 원’으로 표본된다.

이런 표현 방식은 대상에서 사물성을 배제하고 평면도형 ‘원’이라는 기본적인 형태로 전환하는 작가적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이 작품에서 발견하고 선택된 일상적 오브제로 ‘무엇을 표본할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문제를 질문한다. 표본으로 추출된 대상인 자와 탁구공은 박제되어 표준 대상이자 ‘통계적 해석 대상’이 된다.

조은정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자료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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