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힘들다” VS “버티기 힘들다”… 노사 모두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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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오른 것보다 물가가 더 올라서 밥만 사 먹어도 남는 게 없어요.”

양지원(27) 씨는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한 편의점에서 주 4일 하루 8시간씩 최저시급 9160원을 받으며 일한다. 한 달을 꼬박 일해서 쥐는 돈은 110여만 원. 월세 50만 원, 관리비 등 생활비 30만 원을 제하고 나면 외식은커녕 식비를 대기도 쉽지 않다. 그는 편의점 폐기 도시락으로 대부분 저녁을 해결한다.

내년 최저임금 시간당 9620원
5% 인상 결정에 양측 다 불만
“인상률 낮아 밥 사 먹으면 끝”
“고물가에 인건비 부담 떠 안아”
민주노총·사용자 측 표결 불참

30일 양 씨는 “지금 월급으로는 살기가 빠듯해 이번에 최저임금이 많이 오르길 바랐는데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르면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하다”고 했다. 전날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이 반영된다고 해도 그가 더 받는 돈은 월 5만 8880원에 그친다. 그는 “시급이 좀 오르면 일본어 통역사의 꿈을 위해 일본어 학원이라도 등록하려고 했는데 언감생심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460원 오른 시간당 9620원으로 결정되면서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임금 노동자 모두 “남는 게 없다”며 울상이다. 노동자들은 가파른 물가 상승률에 비해 낮은 인상률에, 자영업자들은 고물가에 이은 인건비 상승에 불만을 토로한다.

연제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임상병리사 최 모(27) 씨도 내년도 최저임금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최 씨는 “의사를 제외한 의료인들은 매년 연봉을 산정할 때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정도로 처우가 결정되는데, 겨우 5% 인상 폭으로는 내년에도 형편이 좀 나아지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도 한숨이 깊다. 서면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김하근(55) 씨는 최저임금 인상 얘기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도 매일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직접 일하지만 15명 직원의 인건비만 3000여만 원에 달한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퇴직금, 4대 보험도 같이 올라 김 씨는 내년부터 인건비만 한 달에 300여만 원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3만 3000원짜리 족발 소짜 하나 팔면 손에 쥐는 것은 3000원뿐인데 어떻게 가게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느냐”며 “월세와 식자재비까지 나날이 올라 가게 규모를 줄여 이전하는 걸 고민 중인데 10년째 동고동락한 직원들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8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5% 인상된 시간당 9620원으로 의결했다. 올해 9160원보다 460원 높고, 인상률은 올해 5.1%에 약간 못 미친다. 민주노총 근로자위원 4명은 9620원 안에 반발해 표결에 불참했다. 사용자위원 9명 전원도 전원 퇴장해 기권 처리됐다. 결국 재적 인원 27명 가운데 찬성 12명, 기권 10명, 반대 1명으로 가결됐다.

이번 결정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는 모두 불만을 드러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박진현 주임은 “최저임금 인상률 5%는 물가 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해 사실상 실질임금이 삭감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은 저임금 노동자와 대기업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키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코로나19 여파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중고’가 겹치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상의도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뛰어넘는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소속 근로자의 일자리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했다.

변은샘·박지훈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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