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에 과도한 처벌”… 시행 반년도 안 돼 ‘법 개정’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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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일터 우리가 만듭니다] 1. 흔들리는 ‘중대재해처벌법’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5개월 만에 사실상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국회는 억울한 사업주가 생겨서는 안 된다며 개정안을 발의했고,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예고하며 형사처벌이 아닌 행정제재로 완화하는 방향으로 갈피를 잡았다.

국힘 박대출·권성동 등 공동 발의
“억울한 피해 없도록 형량 낮춰야”
“법률 사문화 의도” 노동계 반발
민주당도 반대, 개정 가능성 낮아

30일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최근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권성동 원내대표와 정진석, 이주환 의원 등이 공동 발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기존 중대재해법의 과도한 처벌로 인해 선량한 자의 억울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개정안을 들고나왔다.

개정안은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이 사전에 충분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의 억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처벌 형량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한다. 법무부가 중대재해 예방 기준 등을 고시하고, 사업주가 이 기준을 지켰을 경우 업체 대표의 처벌 수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처벌 형량 감경 등 주요 권한을 법무부 장관에게 맡긴 점도 눈길을 끈다.

친윤석열계 의원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개정안 발의는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행보에 지원사격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윤 정부는 앞서 국정과제를 통해 “산업안전보건 관계법령 개정 등을 통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지침·매뉴얼로 경영자의 안전과 보건확보 의무를 명확화하겠다”며 사실상 중대재해법 개정을 시사했다.

정부도 중대재해법의 형벌규정을 형사처벌이 아닌, 시정조치나 과징금 등 행정제재로 전환하고 형량 합리화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를 위해 다음 달부터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발동되는 작업중지권 등 현장 애로 사항을 해소하도록 전문가 TF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이 법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다. 중대재해법 1호 사건은 올 1월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였다. 근로자 3명이 사망한 이 사고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최근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현재 중대재해법이 적용돼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은 전국적으로 81건이며, 고용노동부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11건이다.

법 시행 이후 재계는 중대재해법에 대한 불만을 꾸준히 제기했다.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 의무인 ‘적정한’ 조직과 인력, 예산 등이 어떤 수준이어야 하고, 원·하청 관계에서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 의무를 누가 이행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등이 모호하고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이 위축된다며 개선을 요구해왔다.

개정안이 발의되자 재계는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전경련은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있으면 대표이사의 책임 면책이 가능한지 묻는 기업들이 많지만,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 다르다”며 “처벌이 강력한 만큼 법안이 명확해야 하는데, 아직도 모호한 부분이 너무 많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도 재계의 목소리에 적극 공감하며 중대재해법의 문제점을 잇달아 지적했다. 그는 올해 2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없어도 형법의 업무상 과실치상죄 하나만 갖고도 제가 수사하면 정확하게 책임 있는 사람을 엄중하게 처벌할 자신이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여소야대 형국에서 국민의힘이 제안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는 상황에서 여론 역풍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에 국민의힘은 아직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여론 추이를 살펴보는 분위기다.

하지만 시행 반년도 안돼 ‘중대재해법 흔들기’가 현실화되자 노동계를 중심으로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노총은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윤핵관, 경영계 등 삼각 편대가 노동자 목숨을 팔아서 사용자 배를 불리겠다며 정경유착의 포문을 연 것으로 규정한다”며 “이번 발의안은 법 핵심 중에서도 핵심을 사문화하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도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CCTV를 설치하고 관련 조직을 만들었지만,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사고 발생의 책임 소재를 따지기 위함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며 “노동계가 요구해왔던 노동자 안전을 위한 인력, 예산 확충 등의 조치를 실제로 시행하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민주당도 법 개정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중대재해법의 취지를 허물면서 기업주에 대한 처벌을 감경해주자는 행태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며 “개악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밝혔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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