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부산,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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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환대’는 현대사회가 잃어가는 공동체의 핵심이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선한 마음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작용이다. ‘환대’가 낳은 또 다른 ‘환대’는 선의 연대로 확산된다. 불평등, 차별, 혐오, 기후변화 등 인류 공통과제에 직면한 지금, ‘환대’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요즘처럼 ‘환대’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적은 없다. 환대는 남북회담 등 큰 행사에서 ‘환대한다’ ‘환대받았다’는 보도에서나 접했을 뿐 일상에서 자주 쓰는 용어는 아니었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거나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을 때, 말 그대로 ‘환영하고 대접해 주는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했다.

적대적 타자도 수용 때 진정한 해방
역사의 고통과 아픔을 받아 준 부산
‘선의 연대’를 철학적 가치로 삼아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환대’를 검색하면 한두 달 사이에 올라온 내용이 지난 몇 년간의 내용보다 훨씬 많다. 지난달 말 종영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덕분이다.

‘추앙’으로 시작해 ‘환대’로 마무리한 ‘나의 해방일지’는 철학 용어를 일상으로 가져왔다. 추앙이라니! 그 도발적인 단어로 ‘나’를 채우고 ‘타인’을 환대할 때 비로소 스스로를 옭아매던 것들로부터 해방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서 ‘타인’은 적대적인 타자까지 포함한다.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마저도 환대할 때 비로소 해방될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는 종교 수행 과정의 핵심이다.

신의 유무는 차치하고 대부분의 종교는 구원(救援)과 구원(久遠)을 목표로 한다. 구원(救援)이 인류를 죽음, 고통,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이라면, 구원(久遠)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어오는 영원에 관한 것이다. 이 두 ‘구원’을 위한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인마저도 환대할 수 있는 용기다.

성경에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되어 있다.

법화경에는 불경보살이 모든 이에게 “나는 깊이 그대들을 존경하며, 감히 경멸하지 아니하느니라. 그 까닭은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하여 마땅히 작불(作佛)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고 말하며 나무와 돌로 맞고 욕을 먹는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예배행을 관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수행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명’이 가진 다양한 스펙트럼 중 ‘절대적 선’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故) 김종철 선생이 남긴 글 <생명사상과 환대의 윤리>에는 “오랜 인류사에서 인간을 사람답게 만들어오고 나름대로 문명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사람이 사람 관계에서 예를 갖추고 살게 만든 그야말로 원초적인 힘은, 법이 아니라 민중의 원초적인 정의감”이라며 “이게 생명사상이고 바로 환대의 사상”이라 했다. 이렇게 ‘환대’는 사람의 자격을 부정하지 않는 것, 사람다움의 문제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능력은 타인의 감정을 자기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동고(同苦)의 마음, ‘공감 능력’이다. ‘공감’이 전제되지 않은 ‘환대’는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을 잘 발현하는 것이 ‘공존’의 비결이다. 결국, ‘환대’가 없다면 공동체의 가치도 사라지게 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부산이 보여준 게 바로 ‘환대’였다. 강제동원 등으로 조국을 떠났던 동포들은 해방을 맞아 부산항으로 귀환했다. 한국전쟁 때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을 맞이한 곳도 부산이다. 부산은 한국전쟁 중 1023일 동안 피란수도였으며 60여 나라의 유엔군을 연결하고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가 조성된 곳이기도 하다.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란민들이 정착한 곳도 부산이다.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탈바꿈한 미군 부대 명칭인 ‘하야리아’는 한국전쟁 당시 주한 미군 부산기지사령부가 이곳에 설치되었을 때, 부대 창설자인 사령관의 고향 지명이라 하니, 미군마저 부산에서 고향을 찾은 셈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질곡에서 고통을 버텨내고 아픔을 받아 준, 그리하여 다양성과 개방성으로 엮어낸 혼종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부산이 가진 ‘환대’의 역사다.

부산은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행사 중 하나인 세계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다. ‘2030 부산엑스포’를 목표로 달리고 있는 부산이 가져야 할 철학적 가치는 선명하다. ‘환대 도시’ 부산은 관광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저변에 흐르는 ‘환대’의 확산에 있다.

‘환대’는 현대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공동체의 핵심이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가진 선한 마음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작용이다. ‘환대’가 낳은 또 다른 ‘환대’는 선의 연대로 확산한다. 불평등, 차별, 혐오, 환경, 기후변화 등 인류의 공통과제에 직면해 있는 지금, 부산은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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