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탈포털 시대, 지역 언론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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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국장

한국에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가 있다면 일본엔 ‘마스고미’가 있다. 마스코미(매스컴)와 고미(쓰레기)가 합쳐진 말이다. 번듯한 언론사가 돈을 받고 홍보 자료를 기사로 위장하거나 페이지 뷰를 노린 저급한 기사를 쏟아 내는 바람에 생겨난 조롱이다.

미국도 가짜 언론이 골칫거리다. 소고기 부산물에 암모니아수를 섞어 만든 식품 첨가물 핑크 슬라임(Pink-slime)을 빗댄 신조어 ‘핑크 슬라임 저널리즘’까지 등장했다. 가짜 소고기처럼 가짜 언론이라는 비유다. 대체로 지역 신문이 폐간된 곳에 새로 생긴 인터넷 매체다. 극우 성향을 띠고 인종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선동에 골몰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포털 뉴스 유통 독과점만큼
수도권 여론 독과점도 나빠
 
저널리즘 위한 포털 규제와
지역 언론의 경쟁력 강화
균형 잡힌 언론 정책 필요

인터넷에서 진지한 뉴스, 즉 저널리즘의 퇴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소수의 검색 플랫폼(포털)이 뉴스 트래픽을 압도하는 한국은 그 폐해가 단연 최악이다.

한국은 전 세계 주요 46개국 중 언론사 뉴스 사이트 이용 비율은 꼴찌, 포털과 SNS 이용은 반대로 1위다. 외부의 거대 플랫폼이 디지털 공론장 기능을 수행하고 뉴스 생태계를 좌지우지하는 사이 뉴스를 원천 생산한 언론사 사이트는 위축되고 지체를 거듭한다.

흥미 기반의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포털과 SNS에서 심층적이고 긴 호흡의 콘텐츠는 추천 순위에서 밀린다. 자극적인 단타 기사들이 득세하는 온라인에서 언론은 사용자(user)로부터의 신뢰를 잃고 기레기 프레임에 갇힌다. 동시에 사용자들은 사회의 중요한 이슈에 접근할 기회를 잃는다. 뉴스 사용자들은 저널리즘 약화의 가장 큰 피해자다. 문제는 그 과정과 결과가 부지불식간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포털 알고리즘이 사회적 통제 밖에 있어서다.

알고리즘으로 인한 저널리즘의 쇠퇴는 공론장을 왜곡하고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한다. 급기야 알고리즘 규제가 정치 의제로 떠올랐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포털의 기사 추천과 배치를 금지하고, 기사를 선택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이동하는 아웃링크를 강제하는 내용이다. 또 포털 뉴스 유통을 모든 언론사에 개방하고 검색 서비스 위주로 운영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 민주당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윤석열 정부도 인수위 시절부터 점진적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대체로 같은 입장이다. 포털의 뉴스 독점 폐해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기 드문 여야 공감대다.

한데, 시민단체나 학계, 언론계 반응은 조심스럽다. 개정안의 문제 의식에 수긍하면서도 환영의 목소리는 작다. 신문법을 통한 진흥 대신에 정보통신망법을 앞세운 규제가 초래할 부작용, 저품질 기사의 난립, 검색 서비스만 남겼을 때 뉴스 유통 위축을 내심 우려한다.

지역 언론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걱정이 앞선다. 포털에 입점하는 언론사를 심사하고 규제하던 기존의 규칙이 없어지고 무한 경쟁 체제로 바뀌면 대형 매체만 승승장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올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온라인 유료 회원의 증가로 1000만 독자를 돌파했다.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는 올해 온라인 유료 회원 80만을 확보했다.

이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수많은 지역 신문의 폐간, 감원, 경영 악화가 있다. 자본과 기술력에서 뒤처지는 지역 언론이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는 사이 거대 중앙 언론사만 몸집을 불린 것이다. 소수의 언론사가 얻은 경이적인 수치가 빛이라면 대다수 독자들에게 주어진 ‘핑크 슬라임’과 ‘마스고미’는 어둠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뉴스 유통이 무한 경쟁 상태로 바뀔 경우 정보와 인력, 자본과 기술 모두 우위인 소수의 서울 대형 매체에 유리한 상황이 될 것이다.

서울의 대형 언론사는 탈포털에 대비해 왔다. 콘텐츠 브랜드화와 구독 모델에 공을 들였다. 반대로 대다수 지역 매체들은 온라인 뉴스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이 취약하다. 유료 회원과 뉴스 트래픽이 소수의 중앙 매체에 쏠릴 것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결과 힘없는 지역 매체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수도권 시각의 주장만 크게 울려 퍼지는 중앙 집권적인 여론 지형이 공고화될 것이다. 포털의 뉴스 유통 독과점만큼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여론 독과점도 나쁘다.

뉴스 유통에서 탈포털은 시대적 과제다. 저널리즘을 회복하려면 불가피하다. 다만 규제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해서는 안되는데, 그중에 지역 언론의 위축은 피해야 한다.

저널리즘을 회복하기 위한 포털 규제와 지역 언론 진흥에 균형 잡힌 접근법이 필요하다.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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