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K컬처시대에 상상하는 B컬처의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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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2010년 2월 10일 아크로스 후쿠오카(Acros Fukuoka)에서 부산의 현악앙상블 레이디스필 초청연주회 ‘클래식에서 한국 드라마까지’가 열렸다. 프로그램은 클래식소품들과 한국 드라마 주제곡으로 구성했다. 주최측에서는 ‘겨울연가’와 ‘천국의 계단’, ‘대장금’에서 선곡할 것을 요청했다. 우리에게는 철 지난 드라마였지만 일본에서는 기대 이상이었다. 1300여 명의 관객은 내내 박수를 아끼지 않았으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가 이끈 한류현상은 중국과 일본에서 출발했다. ‘강남 스타일’ 떼창과 말춤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지축을 울렸다. ‘기생충’과 ‘미나리’에 이어 ‘오징어게임’의 연이은 수상은 한류가 더 이상 낯선 현상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BTS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 수상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K컬처의 놀라운 성과다. 과거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문화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주변부로 취급받던 문화가 세계 정상에 올라선 비결이 무엇일까.

K컬처는 느닷없이 부는 바람이 아니다. 기술진보와 인터넷 대중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OTT 플랫폼 기반의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는 콘텐츠의 향유방식을 린백(lean back)에서 린포워드(lean forward)로 전환시켰다. 이제 한국문화는 세계인의 손바닥을 장악했다. 콘텐츠의 독창성과 완성도는 기본이다. 폭넓은 공감대도 한몫했다. 질곡의 현대사가 야기한 사회적 갈등과 모순은 한국적 특수성이라 여겼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신음하는 개인의 삶은 세계인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이 과정에서 성별과 연령, 계급, 국경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문화부족이 탄생했다. 이들은 단순한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창작자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기후, 생태, 차별과 혐오와 같은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문화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K컬처는 콘텐츠의 질적 도약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소비 주체의 탄생과 연대로 오늘에 이르렀다. K컬처시대에 부산문화, 즉 B컬처를 상상한다. 개항도시 부산은 근대문화의 세례를 한껏 받은 도시다. 풍부한 문화자산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지방도시’라는 내면화된 식민성에 갇혀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짚어 볼 일이다. 1997년 카네기홀에 처음으로 섰던 한국의 교향악단이 부산시립교향악단이라는 사실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B컬처의 잠재력을 의심하지 않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모험심이 필요하다. 문화적 항해의 닻을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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