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중문화 수도’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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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의 포화를 피해 수많은 피란민이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정부기관과 대학, 기업 등도 부산으로 옮겨왔다. 대중문화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서울의 레코드사들도 부산에서 피란살이를 하며 음반을 제작했다. 이 시기엔 부산을 소재로 하거나 부산에서 만들어진 동요·가곡·가요가 무척 많았다. 애절한 가사를 담은 당시 노래들은 전쟁이 할퀸 국민의 마음을 보듬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전쟁 시기에 만들어져 유행한 ‘부산발 가요’는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 신세영의 ‘전선야곡’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부산야곡, 홍콩아가씨, 인도의 향불, 경상도 아가씨, 백마강, 함경도 사나이, 마음의 고향, 백제의 밤 등을 담은 앨범들이 한국전쟁 시기에 부산에서 발매됐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국제시장, 영도다리 등 부산 지명과 정서를 담은 노래들은 현재까지도 애창 중이다.

부산은 전쟁 당시, 다양한 대중문화를 뜨겁게 끓이는 용광로와 같은 분위기를 제공한 곳이었다. 가수와 작곡가, 작사가 등은 부산에서 고단한 피란의 삶을 살면서도 창작활동에 매진했다. 이런 결과로 동아극장과 부산극장에서는 연이어 음악 행사가 열렸다. 대중가요뿐만 아니라 국악과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연주회도 이어졌다. 그때의 부산은 명실상부한 대중문화 수도였다. 부산은 1970년대까지도 전국 규모 공연이 연이어 초연되는 등 대중문화의 중심에 우뚝 선 도시였다. 부산에서 뜨지 못하면 한국에서 인기를 얻지 못한다는 말이 정답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72주년을 맞은 지난 25일. 부산의 전문예술단체 음악풍경은 ‘피란수도 1000일, 부산의 노래’를 주제로 대중문화 수도였던 부산을 추억하는 콘서트를 마련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한국전쟁 당시, 그리고 그 이후 부산에서 폭발적으로 이뤄졌던 대중문화 활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들이 드물어지고 있다. 더욱이 현재의 대중문화는 수도권 일변도다. 부산 등 지방은 대중문화 변방으로 전락했다. 부산은 한국전쟁 당시는 물론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대중문화를 지키고 한 단계 발전시킨 곳이다.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부산엔 그런 DNA가 내재되어 있다. 그 뜨거웠던 부산의 ‘딴따라 열정’이 다시 솟구칠 날을 기대한다. 천영철 문화부장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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