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금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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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한국인 밥상은 채소 위주 건강식이라는 말이 통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 이젠 고기 빠진 밥상은 왠지 섭섭해질 정도가 됐다. 육류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심지어 육류별 기념일까지 탄생시켰다. 3월 3일은 삼겹살 데이, 5월 2일은 오리 데이, 9월 9일은 닭고기 데이, 11월 1일은 한우 데이로 불린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량이 57.7㎏인데 1인당 육류 소비량이 54.3㎏으로 집계되었으니 그야말로 육류가 주식인 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

그중 삼겹살은 명실상부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 힘들거나 우울할 때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은 큰 위로가 되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밥상 위에 올리고 온 가족이 모여 삼겹살을 굽던 모습은 오래 기억되는 가족 추억의 한 장면이다.

사실 한국인이 삼겹살을 즐겨 먹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1930년대 이화여자전문학교 방신영 교수가 집필한 조선요리제법이라는 책에서 ‘세겹살’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정작 삼겹살이 대중화된 건 1980년대 정육점에 고기 써는 절단기가 보급되고 식당과 가정에는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흔해지면서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식탁 위에 불판을 올려 고기를 바로 구워 먹는 문화는 한국밖에 없다는 점이다. 유튜브에는 한국으로 여행하러 온 외국인이 식탁 중간에 박힌 화로를 보고 한번 놀라고 거기서 고기를 바로 구워서 먹는 문화에 또 한 번 놀라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삼겹살은 한국 고유의 식문화인 쌈을 만나 빛을 발한다. 상추와 깻잎 위에 잘 구워진 삼겹살을 올린 후 마늘, 김치, 명이나물까지 곁들이면 내국인, 외국인 모두 엄지가 절로 올라간다.

이처럼 한국인의 큰 사랑을 받는 삼겹살이 최근 식당 기준 1인분 2만 원을 넘기며 금겹살이 됐다. 팬데믹으로 시작된 전 세계 물류 대란, 사료용 곡물 가격 상승, 아프리카돼지열병 재확산이 겹치면서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거리 두기가 해제되어 오랜만에 정한 친구들 모임에서,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캠핑 시즌의 메뉴에서도 몸값이 많이 오른 삼겹살을 빼려니 아무래도 섭섭하다. 그럼 뭘 줄여야 하나. 김효정 라이프부장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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