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문자, 시간과 공간 끊어진 도리를 증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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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학/문광

작고한 칠불사 통광 스님의 말에 이런 게 있다. “탄허 스님은 항상 당신은 무피염(無披厭), 즉 피로하지도 싫증 나지도 않는 상태에 들어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렇게 탄허 스님은 혼자서도 조선시대 간경도감보다 더 많은 경전을 번역했다. 어떤 경지를 넘어서 있었다는 거다.

탄허(1913∼1983) 스님이란 이름 앞에 ‘학’을 붙여 ‘탄허학’을 표방한 책이 이다. 탄허 3걸(각성 통광 무비)의 한 사람인 범어사 무비 스님은 “탄허학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타이틀”이라는 추천사로 이를 반긴다.

탄허 스님 이름 앞에 ‘학’ 표방한 책
주역과 정역 융합한 20세기 한국학

통상 한국 사상은 회통하는 사상이라고 한다. 원효 최치원 동학 등등이 그렇다. 그런데 그 본보기의 하나가 탄허 스님의 사상이라는 거다. 이 책의 저자 문광 스님은 2013년 ‘탄허학’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했는데 “20세기 한국 사상사에서 한 개인을 놓고 볼 때 총합적 학술을 전개해 ‘학(學)’이라는 칭호를 부여할 만한 대표적 인물이 탄허 스님”이라고 말한다. 그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탄허학’이 ‘21세기 인류의 공통 화두’가 될 것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말한다. 유불선을 회통하고 기독교와 서양 사상, 나아가 주역과 정역을 방대하게 융합한 20세기 한국학의 학종(學宗)이 탄허 스님이라는 거다.

탄허학의 체(體)는 무애 회통의 사상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결국 “언어 문자와 시간 공간이 완전히 끊어진 제1구 도리를 증득하자는 것이 바로 탄허 사상의 골수이자 종지”라고 한다. 1983년 입적 직전 “한 마디 남겨주십시오”라는 청에 탄허 스님은 “일체 말이 없어(一切無言)”라는 제1구를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생전에 탄허 스님은 “유교는 나무뿌리를 심는 것이라면 도교는 그것을 북돋는 것이며, 불교는 나무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고도 스님은 교육과 역경 불사에 헌신한 거다.

성철 스님과 탄허 스님은 입장이 달랐다고 한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서 달랐다. 철(徹)적 가풍, 탄(呑)적 가풍이 그것으로 전자가 에베레스트 고봉의 수직 지향적 기상이 넘친다면 후자는 태평양 같은 수평 지향적 화엄의 탄탄무애한 풍류가 압권이라고 한다. 어느 것이 옳으냐, 가 아니라 둘 다 한국불교를 풍성히 했다는 거다. 탄허 스님의 돈오점수는 스승 한암과 저 멀리 고려시대 지눌을 잇는 거다. 돈오점수의 가풍은 점수의 자세로 입적하는 건데 지눌 한암 탄허, 세 스님이 모두 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탄허 스님의 역경에서 핵심은 ‘직역’이었다. 경전 어휘를 살리면서 의역을 피했다. 이걸 저자는 ‘한국적 역경’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껏 강원에서는 “탄허 스님을 모셨나”라는 말이 오가는데 그것은 탄허 스님이 현토한 경전을 봤냐는 말이다.

탄허 스님이 제1의 경전으로 삼은 것은 화엄경이라고 한다. 화엄경은 모든 것을 회통한 태평양이라는 거다. 우리에게 미래의 희망도 던져놓았다. “우리가 이 도덕 분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 동안 남을 침략해 본 적이 없고 오직 압박을 인내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 한국은 필경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탄허 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것이다. 문광 지음/조계종출판사/476쪽/2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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