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너무나 낯선 역대급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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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다음 달 9일 치러지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여러모로 과거 대선과 다른 모양새다. 예측과 분석은 주로 과거 경험치를 잣대 삼기 마련인데, 이 생경한 장면 앞에 정치 전문가들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초 접전이 예상되던 더불어민주당 경선은 이재명 후보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고, 국민의힘 역시 초반 예상을 깨고 끝까지 예측불허의 경쟁을 펼쳤다. 최근엔 안철수 후보가 급부상했다.

우선 이번 대선은 직선제 이후 최초로 국회의원 0선의 양강 후보 간 각축전이 눈에 띈다. 1987년 이후 역대 대선의 유력 후보와 당선자는 모두 국회의원 경력자들이었는데, 이번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기초지자체 시장과 도지사 외에 국회 경력은 없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또한 국회 경험이 없다.

내달 대선, 역대 선거 문법과 딴판
국회의원 ‘0선’, 비호감, 네거티브
예측불허 승부 속 생경한 장면 속출

진영 간 대립 격화와 분노 등 원인
객관적 시각으로 현상 근원 읽어야
시민 참여·감시 따라야 정치 발전


둘째, 역대급 ‘비호감 선거’다. 현재 여론조사에 이름을 올린 모든 후보의 비호감도는 크게 높다. 지난 19대 대선 땐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경우 호감도가 더 높았다. 선거는 좋아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과정이지만,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반대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직선제 이후 강화된 지지율 정치로 진영화가 심화하면서 진영 간 감정 대립이 격화하고 정책 선거가 실종됐다.

셋째, 당내 비주류 후보 간 대결이다. 역대 대선 후보는 모두 당내 주류였다. 주류 세력의 수장이거나, 적어도 주류 세력에 의해 천거된 후보였다. 이재명 후보는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 세력의 주요 후보가 잇따라 낙마한 상황에서 대선 후보를 거머쥐었다. 탄핵으로 계파가 와해한 국민의힘은 지지율 높은 당 바깥의 윤석열 후보를 대안으로 뽑았다. 그러다 보니 양 캠프 공히 혼란을 겪었다.

넷째, 지지율 등락 폭이 역대급이다. 작년 11월 국민의힘 경선 직후 윤 후보가 컨벤션 효과 등으로 여론 지표상 크게 앞섰다. 12월엔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 잇단 실언 등으로 다시 이재명 후보가 앞섰다. 올해 1월엔 윤 후보와 이준석 대표의 극적 화해, 선거캠프 해체를 기점으로 지지율은 다시 역전됐다. 후보 단일화 없이 이렇게 큰 등락 폭을 보여 준 선거는 없었다. 중도층이 부유한다는 방증이다.

다섯째, 극강의 네거티브 선거다. 유튜브 방송 기자가 몰래 녹음한 후보 배우자와 사적 대화를 공영방송이 전례 없이 보도하며 언론 윤리와 공공의 알 권리 주장이 맞붙었다. 소위 ‘형수 욕설’ 녹취를 선관위가 원본만 공개 허용을 결정하자 이 후보가 유세 도중 울음을 터트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당한 네거티브 선거가 규범 없이 법의 판단에 내맡겨지고 있다.

여섯째, 지지 후보 결정 시점이 역대급으로 빠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조사한 올해 1월 28~29일 조사에서 계속 지지는 84.8%였다(조사 대상 1000명, 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 ±3.1%). 19대엔 같은 시기 60.5%에 불과했다. 한국갤럽 조사에선 ‘한 달 이상 전 후보 결정’의 경우 19대 때는 54%, 18대엔 65%였다. 강한 진영 결집과 높은 정권 심판 여론 때문으로 보인다.

정치학자들은 통상 대선은 전망 투표,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회고 투표로 규정한다. 전망 투표는 새로운 리더십을 선택하는 대안 선거, 회고 투표는 정권 평가 성격의 심판 선거다. 그런데 이번 대선엔 전망 투표보다 회고 투표의 성격이 강한 심판 선거 양상이다. 열거한 여섯 가지 ‘역대급’ 현상들은 진영 간 강한 격돌에 의한 분노 선거, 반대 선거의 결과다.

원인 없는 현상은 없다. 변화의 조짐은 반드시 긍정적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중세의 마녀사냥도, 근대의 전체주의 출현도 새로운 세기에 대한 대중의 불안이 만든 현상이었다. 기존 정치와 선거 문법이 와해하고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낯선 현상이 지배하는 이번 대선은 어쩌면 우리 정치 체제의 일대 변화를 요구하는 현상일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혼란스러운 근대국가 태동기에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통해 공화국의 미래를 대비했다. 생경한 혼란의 근본 원인을 간파하여 ‘운명의 신’에 맞서는 ‘인간 의지’의 방도를 찾아내야 할 지식인과 학자들이 선거 캠프와 진영에 가담하는 것에 더욱 신중할 것을 당부한다. 가담하는 순간 선거 논리의 포로가 되어 객관적 시각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흐려진다.

선거에 가담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선거 현상의 근원을 읽어 내 현실 타개책과 미래 대안을 내놓는 일은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어차피 대중은 자기 이해나 감정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와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성장한다. 선거를 통한 정치 발전은 정치인들만의 몫이 아니다. 시민의 참여와 감시, 지식인과 학자들의 비판과 대안, 정치인의 책임 의식이 어우러져야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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