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마다 눈꽃 피운 겨울 마법...전북 무주 덕유산 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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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진작가가 설천봉에서 하얀 눈에 덮인 덕유산 일대의 사진을 찍고 있다.

전북 무주 덕유산에 눈꽃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0년 전 겨울 그곳에서 눈꽃의 풍광에 마음껏 취한 생각이 떠올랐다. 눈꽃 구경 성공 여부는 날씨의 변덕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생각하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목표는 덕유산리조트 관광 곤돌라였다.

관광곤돌라 타고 단숨에 1500m 설천봉
제대로 등반하려면 겨울 장비 필수
설천봉 휴게소 뒤편 설경 환상적
사슴뿔 닮은 구상나무 눈꽃

■덕유산리조트 관광 곤돌라

덕유산리조트 관광 곤돌라는 산을 좋아하거나 겨울철 눈꽃 구경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명한 곳이다. 곤돌라에 몸을 싣고 해발 1500m 설천봉까지 올라간 다음 눈꽃을 실컷 구경하면 된다. 산 정상에서 시원하게 눈을 보고 싶으면 향적봉까지 20분만 더 걸어갈 수 있다.

출발에 앞서 덕유산리조트 측에 전화를 걸어보니 눈꽃을 볼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설을 전후해 눈이 5cm 가량 내렸다는 것이다. 서둘러 제설한 덕에 도로 상태는 좋으며 산에 오르면 눈이 많이 쌓여 있다는 것이었다. 날씨는 매우 맑았다. 대전통영고속도로 덕유산IC까지 가는 내내 해가 쨍쨍 내리 비쳤다. 리조트 측 설명대로 도로는 비교적 말끔하게 청소를 마친 상태였다.

덕유산리조트 스키장에서는 스키어들과 보더들이 하얀 눈밭에서 질주를 즐기고 있었다. 초급에서 고급까지 다양한 코스에 걸쳐 어린이부터 중년 남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스키복으로 무장한 채 눈밭을 달렸다. 출발지로 올라가는 리프트 앞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탑승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설천봉까지 올라가는 관광 곤돌라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1시간이나 줄을 서야 한다는데 지금은 상황이 나은 모양이었다. 대부분 설과 방학을 맞아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이나 산을 타면서 눈꽃을 즐기려는 등산객들이었다.

곤돌라에는 원래 1칸에 최대 6명이 탑승할 수 있다. 10년 전에는 학생들을 데리고 단체연수에 참가한 교사 일행이 동승한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각 칸에는 한 명이든 서너 명이든 같이 온 일행만 타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각 칸에 탑승하는 사람들은 대개 2~3명이었다.

몸을 싣자마자 곤돌라는 설천봉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망감과 불안감이 온몸을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산 아래쪽 스키장 코스에 인공적으로 뿌린 것으로 보이는 눈을 빼고는 눈 풍경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었다.

곤돌라가 2~3분 정도 올라가자 불안감은 사라졌다. 산행객의 눈을 부시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설경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산의 바닥을 뒤덮은 눈밭이 보이더니 잠시 후에는 각종 나뭇가지에 화려하게 핀 눈꽃이 이어졌다.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꽁꽁 언 눈은 정말 하얀 꽃이었다. 마치 세상이 흑백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변한 것처럼 산 중턱에는 흰색과 검은색 뿐이었다. 사람들이 왜 “눈꽃, 눈꽃”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5년 전 중부 유럽 스위스의 인기 관광 명소인 알프스의 융프라우요흐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곳의 눈은 산과 기암괴석을 뒤덮고 있었다. 나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반면 덕유산의 눈은 나무에 피어 있는 꽃이었다. 웅장한 면에서는 융프라우요흐가 더 나을지 모르지만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은 덕유산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천봉에 오르다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설경에 반해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곤돌라는 어느새 설천봉에 도착했다. 곤돌라 출구 앞에서는 설천봉의 명물인 상제루가 밝은 햇빛을 반사하면서 관광객들을 맞이했다. 상제루 지붕은 눈에 덮이고 얼음에 꽁꽁 얼어 있었다.

설천봉 정상의 기온은 영하 2~3도를 오르내렸다. 그래도 이 정도는 참아줄 만하다. 날짜를 제대로 고르지 못할 경우 설천봉 정상 추위는 장난이 아닌 수준에 이른다. 바람이 거칠게 불 경우 체감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 순식간에 휴대폰을 잡은 손이 꽁꽁 얼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설천봉은 눈이 가득 쌓여 하얀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주변 봉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푸른 하늘만 빼면 짙은 색의 산과 그 위를 뒤덮은 눈, 그리고 창공을 여유있게 흘러가는 구름까지 더해 온 세상은 흑백뿐이었다. 등산객이나 산책객들은 설천봉 곳곳을 돌아다니며 휴대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장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피어난 눈꽃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해 주기 때문이었다.

눈 구경을 더 하려고, 덕유산 산행을 즐기려고 향적봉까지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그들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20분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산행 준비를 갖추지 못한 산책객에는 무리였다. 아이젠 같은 겨울철 산행 장비도 없이 산에 오르는 것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넘어진 것만 해도 여러 차례였다. 상제루 안의 상점에서 아이젠 등을 대여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지만 저질 체력을 감안해서 포기하기로 했다.

설천봉 휴게소 뒤편으로 돌아갔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설경이 가장 훌륭하기 때문이다. 하얀 눈으로 덮인 주변의 산봉우리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휴게소 뒤편에 잔뜩 줄지어 선 구상나무의 앙상한 가지는 흰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다. 어떤 나무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썰매를 끄는 루돌프 사슴의 뿔을 닮은 것처럼 보였다. 아침만 해도 미세먼지가 잔뜩 끼었던 하늘은 맑게 개어 하얀 구름이 느긋하게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문득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 풍경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추위를 견디다 못해 서둘러 관광 곤돌라를 타고 다시 내려오기로 했다. 코로나19를 고려해 열어 놓은 창 사이로는 맑고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다. 따스한 햇볕은 그 틈을 비집고 창 안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내려가는 눈 풍경은 올라올 때보다 더 환상적이었다. 방향이 바뀌었을 뿐인데 산의 풍경은 새로운 곳에 온 것처럼 엄청나게 달라 보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겨울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하얀 털실로 짜던 그물 모양 레이스나 털옷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키장 휴게실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양지 바른 나무 벤치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잠시 즐기기로 했다. 스키어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눈밭을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산 아래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모든 일도 눈처럼 하얗고, 스키처럼 시원하게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모락모락 피어오른 커피 온기가 안경에 김을 서리게 만든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인 모양이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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