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K시민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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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민족 최대의 명절’ 설 연휴에 접어든다. 예전엔 새해를 일 년에 두 번씩 맞이하는 게 번거롭게 여겨졌는데 나이 먹어 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새해가 한 달쯤 지나서 다시 맞이하는 설날은 ‘패자부활전’ 느낌이다. 경기에서 진 사람에게 다시 한번 처음부터 참가할 기회를 주는 사회적 시스템, 얼마나 인간적인가.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또 오는, 명절증후군이라는 불청객만 잘 달래 보내면 될 일이다. 떡국, 차례, 세배, 설빔, 덕담, 윷놀이, 널뛰기…. 설날에는 우리 것 천지다.

설날 안방극장에는 언제부터인가 외국인 며느리·사위가 단골이 되었다. 다문화 가정은 우리 민족일까 아닐까.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은 민족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으로 정의한다. 인종이나 국가 단위인 국민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부연 설명도 붙어 있다. 사전 밖의 세상은 다르다.

설날 TV 외국인 며느리·사위
다문화 가정은 우리 민족일까

지방소멸·인구감소 당면 과제로
이민 정책 변화 없이 해결 못 해

우리 명절 세계인 축제 될 수도
한국인 정의에 다문화 포함해야


부산시 도시외교정책고문으로 활동하는 로이 알록 씨에게 몇 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딸이 유치원에서 “단군의 자손이다”라는 노래를 부르자 친구들이 “너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고 해서 아이가 울면서 왔다. 그가 “엄마가 한국 사람이니까 충분히 단군의 자손이다”고 설명해 주었는데 다음 날에는 “반반의 자손이다”는 놀림을 들어야 했다. 그는 “우리는 50%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 100%, 인도 100%를 합쳐 200%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고 일갈했다. 귀화자와 이민자 2세 등 이주배경인구는 2020년 222만 명에서 2040년에는 352만 명으로 늘어나 전체 인구 중 6.9%를 차지할 전망이다. 현재 부산 인구보다 많다.

부산 인구의 타시도 유출이 너무 심해지니 요즘은 서울에서도 걱정하는 별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0년간 부산에서 순유출된 인구를 합하면 무려 55만여 명. 지방자치법은 인구 50만 이상 도시를 대도시로 규정한다. 부산에서 대도시 하나의 인구가 뚝 떨어져 나간 셈이다. 그러고도 그 도시가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2021년 이민자 체류 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도 의미 있는 수치가 나온다.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부울경으로 이민을 온 외국인이 최근 1년간 3.8%나 줄어 전국에서 가장 큰 감소율을 기록한 것이다. 반면에 인천, 경기, 대전, 충남, 충북, 세종에서는 증가했다. 먹고살기 위해 서울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떠나는 게다.

미래 예측에는 점보다 인구를 보는 편이 훨씬 용하다. 지금 같은 출생아 수가 유지되면 18년 후에는 현재 대학 입학 정원 48만 명 가운데 최소 20만 명의 정원미달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지방대학 가운데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까. 대학이 몰락한 뒤 지역경제는 또 어떻게 될까. 저출산과 고령화는 생산 인구 감소와 노인 부양비 증가로 이어진다. 국가 재정은 악화되고, 세대 간의 갈등은 첨예화될 전망이다. 주지하듯이 인구 변화에는 출산율, 사망률, 외부 인구 유입 세 가지가 영향을 미친다. 출산율 제고를 위해 그동안 온갖 정책과 돈을 퍼부어도 성공하지 못했다. 남은 정책적 대안은 이민자 유입이다. 최근 이민정책연구원은 한국이 현재 인구를 유지하고 생산 인구 감소를 막으려면 2060년까지 1517만 명, 소비 인구를 유지하려면 1762만 명의 대체 이민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민 정책 변화는 사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선이 4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들 사이에 다문화 관련 공약과 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외국인 관련 정책은 논란의 소지가 커 후보들이 섣불리 의견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이 경제 규모에서 한국에 추월당한다’는 칼럼으로 화제가 된 노구치 유키오 일본 히토쓰바시 대학 명예교수의 견해를 소개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일본은 이민에 굉장히 소극적인 나라이고, 한국 역시 외국 노동력에 적극적이지 않다. 고령화된 한국에는 과감한 이민 정책이 필요한데, 어떻게 대처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들은 여전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자국민의 자연감소를 외국인의 증가가 받쳐 준 덕분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어야 하지만 이민 정책의 변화와 다문화와 공생하기 위한 사회통합 정책의 개발도 더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 한류는 세계인이 즐기는 문화가 되었다. ‘민족 최대 명절’이라고 부르는 수식어는 너무 협량해 보인다. 우리 명절이 세계인이 즐기는 축제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한국인의 정의에도 다문화가 포함될 필요가 있다. 설날을 맞아 진화한 한국인, K시민을 생각한다.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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