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피하자” 건설업계 ‘안전 사장’ 모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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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가 될 수는 없다!”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두고 건설업계에서 들리는 이야기다.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강도 높은 처벌을 받을 뿐 아니라 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브랜드 가치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50인 이상 사업장은 27일부터 적용받고, 2년 후에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전 사업장에 적용된다. ▶관련 기사 2·11면

특히 건설업체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초긴장 상태다. 일부 대형 건설사 사업장은 ‘1호’를 피하려 설연휴를 앞당겨 27일부터 공사장을 닫는 곳도 있다. 사업주 처벌이 강화되면서 대표이사를 급하게 바꿔 일명 ‘안전 사장’을 두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27일 법 시행 앞두고 대응 부심
사업장 사고 땐 ‘브랜드’ 치명상
오너·경영책임자까지 구속 우려
67개 업체서 대표이사 바꾸기도
부산시 건설본부장 자리도 꺼려
최근 두 달 사이 3명이나 교체

대한건설협회 부산지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이후 대표이사를 교체한 업체는 모두 67개사로 전년(59개)보다 14%가량 증가했다. 한 부산 건설업체 대표는 “나이가 많고 자산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오너들이 굳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최근 대표를 바꾼 곳이 더러 있다”고 전했다.

민간업계뿐만 아니라 공직 사회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은 ‘폭탄 돌리기’에 비유된다. 언젠가 터지는 것이 분명한 폭탄이라 책임자가 되어 처벌받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부산시 건설을 총괄하는 건설본부장이 최근 두 달 사이 3번이나 바뀐 배경도 그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분위기는 일선 구청에서도 뚜렷하다. 구청마다 책임 부서의 장이 되지 않기 위해 서로 미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부산의 한 고위공무원은 “교육이나 인력 투입 등 업무를 감안하면 총무과가 책임 부서가 되어야 하지만, 대부분 상대적으로 부서 파워가 떨어지는 곳이 떠맡은 실정”이라고 전했다.

지역 건설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지역의 소규모 업체들에 가혹한 처벌이 될 것을 우려한다. 부산울산중소기업중앙회 허현도 회장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전문경영인을 따로 두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기업의 대표가 영업, 생산, 총무 등 1인 4역 이상을 맡는다”면서 “만약 사업장에서 사고가 나서 대표가 구속되면 회사를 경영할 사람이 사라지는 셈이라서, 법 자체가 공포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법 시행에 맞춰 적극적으로 안전사고에 대비하자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대한건설협회 부산시회는 26일 중대재해처벌법 설명회를 갖고, 회원사들의 대응을 지원한다. 부산도시공사는 감리 이외에 부산시 건축위원회 전문가로 구성된 특별점검반을 꾸려 현장을 돕기로 했다.

부산시는 25일 기업을 초청해 산업재해예방대책회의를 열어, 2026년까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는 ‘산재사망 제로 도시 부산’ 비전을 밝혔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권혁 부산대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처벌의 근거이자 면책 규정이다. 경영책임자가 의무를 다한다면 사고가 난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막연한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송지연·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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