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다시, 시민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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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20세기 도시 발전의 아이콘은 자동차와 거대 건축물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에서 발생한 환경, 안전 등 당시 사회 문제를 이상적인 대규모 물적 환경을 조성해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이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도시 건축의 한 조류가 ‘어바니즘(urbanism)’이다. 여기서는 도시를 건축물이나 건축하는 대상으로 보았다. 대표적으로 1925년 <어바니즘>이라는 책에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고속도로 중심의 기하학적 도시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문제는 현대 도시계획의 선구자라고 일컬어지는 그가 도시를 ‘기계(machine)’로 보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도시 속 시민(citizen)은 단지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했다.

건설 위주 도시 재개발 한계 맞아
대안은 주민 주도 ‘동네 생활명소화’
‘도시 공간은 공공자산’ 인식 필요

20년 전 미국의 한 전형적인 자동차 중심 소도시에 산 적이 있었다. 폭염 속에 보도도 없는 도로 옆 잔디를 걷다 경찰차로 첫날 등교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학과장 교수님은 웃으며 “이런 도시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게 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졸업 후 살던 미국 남동부 대도시 애틀랜타에 어머님이 오셨다. 밤에 가끔 총소리도 들리는 곳이라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얼마 후 서둘러 귀국하면서 “여기는 사람 살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야”라고 말씀하셨다.

르코르뷔지에 이후 후학들은 어바니즘에 기반한 물적 환경 조성을 ‘도시계획’ 또는 ‘도시설계’라고 신봉했다. 도시는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 거대한 물적 토대 그 자체를 중요시했다. 결과는 어떠한가. 자본의 이해와 결합한 결과, 도시계획에서 시민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대규모 건설과 물리적 환경 조성만 남았다. 시민 공동체로서의 마을은 사라지고, 생활권 경계도 없어진 아파트 건설만이 진행됐다. 동시에 자동차 중심의 도시 가로는 더 걷기 힘들어졌다. 거의 모든 곳이 사유화하면서 시민 모두가 지속가능한 공유 자산은 줄어들었다.

단적인 예로 ‘도시공원 일몰제’와 ‘도시개발 사업’을 보자. 1999년 헌법재판소는 도시공원을 위해 묶어 둔 사유지에서 장기간 사업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땅 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공원으로 지정만 한 채 20년 이상 매입하지 않으면 이를 해제하도록 한 도시공원 일몰제가 도입된 계기가 됐다. 그럼에도 시 정부는 20년간 공원 확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시민 공동의 자산을 만들어 간다는 도시계획 정신을 망각한 무책임과 도시계획에 대한 몰이해라 할 수 있다. 또 여러 가로 구역을 통합해 사업을 진행하는 시 내부의 많은 도시개발 사업 단지는 사업 후 지구 내부를 폐쇄해 도시 내 고립된 섬으로 남았다. 그들의 고급 주거단지 내부는 배타적인 사적 공간으로 이곳을 소유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

위대한 도시 사상가 중 한 명인 제인 제이컵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책에서 어바니즘에 입각한 도시개발은 도시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고층 건물의 외양을 통해 도시 겉모습을 만드는 물리적 개발 사업이 오히려 지역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은 도시계획을 넘어 시대정신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도시는 자유로운 시민들이 각자의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곳이고, 다 함께 지속 가능한 공동의 자산을 가꾸어 가는 곳이다. 서울시립대 강명구 교수는 저서 <도시의 자격>에서 “도시는 누가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쥐여 주는 것이 아니다. 도시계획은 시민과 공동체가 그들의 터전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만들고 틀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어바니즘의 오·남용 결과는 결국 우리의 과제로 남는다. 최근 시민들은 이러한 왜곡된 도시 발전 상황 속에서도 지역 활성화를 이뤄 내는 주체로 나서고 있다. 거대한 물리적 개발 대신 살고 있는 동네를 중심으로 지역의 매력을 높이고 있다. 주변의 카페, 로컬푸드점, 동네 시장 등이 새로운 지역의 생활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또 마을협동조합과 소규모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조금씩 늘고 있다. 일선 지자체도 마을 재생, 산책로 조성, 소규모 공원 조성과 작은 도서관 건립을 통해 더디지만 이에 조금씩 화답하고 있다. 부산시의 생활권 중심 도시계획, 15분 도시 조성, 탄소중립 도시 추진도 적절한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이런 대응 역시 물리적 개선만 추구할 경우 기존 어바니즘의 오류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는 기계가 아니며 시민은 기계의 부품이 아니다’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더불어 공공자산인 도시 공간을 구축하는 일이 바람직한 도시계획의 핵심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노해 시인의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구처럼, 다시 시민만이 희망이기에, 시민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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