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943. 온데간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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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사진을 찍는답시고 비금도와 영광 등 국내 염전을 많이 찾아다녔지만 증도 만한 곳이 없었다.’

이 문장엔 띄어쓰기를 잘못한 게 하나 있다.(긴장하지 마시라!) 띄어쓰기가 어렵다는 분들, 걱정하실 것 없다. 어렵게 느끼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또 별로 어렵지 않은 게 띄어쓰기다. 기초 문법지식만 있으면 헷갈릴 게 없는 것이다. 관심과 기초, 이게 바로 해법인 것.

①사랑할만하다. ②신발짝만하다. ③눈곱만하다.

똑같이 생긴 ‘-만하다’꼴인데, 어떻게 띄어 써야 하는지 보자. 먼저, ①에서 ‘만하다’는 보조형용사. 용언의 관형형 뒤에서 ‘-을 만하다’ 구성으로 쓰인다. 해서, ‘먹을 만하다/사랑할 만하다’처럼 띄어쓰기해야 한다.

②에서 ‘만하다’는 ‘보조사+용언’이다. 보조사는 조사처럼 앞말에 붙여 쓰고, 용언은 띄어쓰기해야 한다. 즉 ‘키가 형만 하다’처럼 써야 하는 것. 그러니 ‘신발짝만 하다’처럼 쓰는 게 옳다.

③은, ‘눈곱만하다’로 써야 한다. 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주 쓰다 보니 긴밀성이 높아져 한 단어가 된 것으로는 ‘걸고넘어지다, 난데없다, 대문짝만하다, 맞아떨어지다, 본체만체하다, 온데간데없다, 울고불고하다, 쥐방울만하다, 참다못하다, 하잘것없다’ 따위가 있다.

해서, ‘④쓸 만하다, ⑤솔방울만 하다, ⑥볼만하다’처럼 써야 하는 것. 그러니 글머리 문장에서는 ‘증도 만한’이 ‘증도만 한’이라야 했다.

그러면, ‘알만 하다’와 ‘알 만하다’는 어느 것이 옳을까. 이건 둘 다 성립한다. 즉 ‘알만 하다’는 ‘알 크기 정도 된다’는 뜻이고 ‘알 만하다’는 ‘알 것 같다’는 뜻인 것. 띄어쓰기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예전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김태균이 “요코하마 야구장은 산만한 느낌이 든다”고 한 적 있는데, 이 ‘산만한’을 ‘산만 한’으로 띄어 쓰면 역시 뜻이 완전히 다르게 된다. 복습하자.

‘내가 분꽃씨만한 눈동자를 깜빡이며/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거기 어머니와 꽃밭이 있었다/…//민들레만하던 내가 달리아처럼 자라서/장뜰을 떠나온 뒤에도 꽃들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시인 도종환의 산문집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 실린 시 ‘꽃밭’인데, 여기서 ‘분꽃씨만한, 민들레만하던’은 ‘분꽃씨만 한, 민들레만 하던’의 잘못.

‘췌장암 생존율이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암을 의심할만 한 증상이 초기에는 잘 안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신문 기사에 나온 ‘의심할만 한’은 ‘의심할 만한’이라야 했다. 역시, 알고 나면 어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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