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제대로 된 애도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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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많은 부산이다. 무심코 오른 뒷산 곳곳에 무덤들이 숨어 있다. 그것들을 품은 겨울산은 아무런 말이 없지만 숲길을 걷다 보면 깨닫게 된다. 죽은 자의 무덤이 산 자의 공간 곁에 바싹 붙어 있다는 사실을. 삶과 죽음이 한통속이라는 얘기다. 옛사람들은 영혼이 저승에서 살아간다고 여겼다. 죽은 후에 그 영혼이 저승에 무사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장례(葬禮)라는 의식이다.

자연환경과 종교, 나라마다 고유의 장례 문화가 있다. 고산에 위치한 티베트에서는 시체를 매장하거나 화장하지 않고 독수리가 쪼아 먹도록 놔둔다. ‘천장(天葬)’이다. 독수리가 죽은 시신을 먹고 하늘에 오르면 죽은 사람도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중국 일부에 가면 높은 산 아찔한 절벽에 관을 매달아 놓은 절벽 묘지를 볼 수 있다. 파푸아뉴기니의 어느 부족은 시체를 먹음으로써 죽은 자를 몸속에 지닌다. 배를 육지로 끌어올려 유해와 함께 땅속에 묻는 8~10세기 바이킹족의 장례 풍속도 있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은 무엇보다 장례 과정 자체를 중시했다. 시신을 가운데 놓고 망자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한 사람씩 나와서 망자가 살아 있을 때 자신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한다. 좋았던 일도 섭섭했던 과거도 심지어 망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도 다 드러나는데, 거기서 나온 말들은 모두 면책이 된다고 한다.

한국인의 장례 문화는 영화 ‘축제’(임권택 감독)나 ‘학생부군신위’(박철수 감독)에 탁월하게 묘사돼 있다. 사람들이 상가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고 울고 잠을 잔다. 다 함께 슬픔을 나누는 방식이 마치 난장 같다. 장례식에서조차 산 자들의 일상적인 삶은 지속되는 바, 이게 망자를 잘 보내 드리는 도리라 믿었다.

최근 방역당국이 코로나19 사망자에 대한 ‘선 장례 후 화장’ 법안을 행정예고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유족들은 ‘선 화장 후 장례’ 원칙 때문에 애도하고 통곡할 최소한의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27일부터는 유족들이 장례부터 먼저 치를 수 있게 된 것인데,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애도와 위로의 과정은 꼭 필요하다. 애틋함, 그리움, 원망 따위 모든 감정을 푸는 해원(解寃)의 시간. 이게 없다면 망자를 마음속에서 잘 보내 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망자의 혼도 제대로 떠날 수 없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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