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허점 뚫고 몸집 키운 미인가 국제학교… 교육청, 회초리 들어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어학원으로 등록한 채 영어유치원을 운영하다 국제학교 개설까지 앞둔 해운대구 B국제학교의 블로그(왼쪽)와 영어유치원을 운영 중인 강서구 C어학원의 홈페이지. 웹페이지 캡처

교육당국의 허술한 관리·감독망을 악용해 미인가 국제학교가 난립(부산일보 1월 21일 자 1면 보도)하고 있지만 부산지역은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공교육 제도의 근간인 ‘의무교육’을 무력화하는 위법 시설인 만큼 더 큰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 허술 악용 ‘사업 확장’ 지속
버스·TV 등 광고하며 학생 모집
부산교육청, 소극적 대응도 한몫
교육계 “전수 조사·폐쇄 조치를”
서울은 고발 조치 등 적극적 대처



■똑같은 학교? 왜 ‘위법’인가

국내에서 합법적 외국인학교(국제학교)는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초·중등교육법상 시·도교육감 인가를 받은 ‘외국인학교’로, 부산에는 부산외국인학교, 부산국제외국인학교 등이 있다. 두 번째는 인천 송도국제학교처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경자법)에 따라 설립된 ‘외국교육기관’이다. 2024년 개교를 목표로 부산 명지국제신도시에 설립을 추진 중인 영국 ‘로얄러셀스쿨’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특별법을 근거로 세운 KIS 제주캠퍼스 같은 ‘국제학교’가 있다. 외국인학교의 경우 내국인 학생이 다니려면 3년 이상 해외 체류 등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하고 경자법에 근거한 국제학교는 내국인 정원을 전체의 30~50%로 제한한다. 제주도 국제학교는 별다른 제한이 없지만, 멀리 '유학'을 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수년 전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위법 국제학교가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교육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유학을 가지 않고 해외 교육과정을 국내에서 밟을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유사 시설이 전국으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들 미인가 시설은 학기당 1000만 원이 넘는 고액 학비를 받아가며, 영어권 국가의 초·중·고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허술한 감독, ‘사각지대’서 활개

미인가 국제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의무교육 대상인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해당 학교를 다닐 경우 정식 ‘전학’ 절차를 밟을 수 없다. 교육당국은 ‘정원 외’로 분류한다. 국내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학생이 적응을 못해 다시 일반 학교로 돌아가려면 제약이 따른다.

관할청이 폐쇄 명령을 내리거나 업체에서 일방적으로 폐업할 경우 재학생들이 ‘교육 난민’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실제 타 지역에서 국내 학력 미인정으로 어쩔 수 없이 홈스쿨링을 하며 검정고시를 치거나, 1~2년 아래 학년으로 복학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대구 A국제학교의 경우 법적으로 학교도, 학원도 아닌 탓에 교육당국의 관리·감독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채 코로나 관리 대상에도 빠져 있는 실정이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해운대교육지원청에 등록된 학원 명단을 바탕으로 방역지침 준수 여부를 관리해 오고 있는데, 해당 시설은 학원으로 등록돼 있지 않아 관리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영어학원을 사실상 영어유치원처럼 운영하는 위법 사례도 늘고 있다. 해운대구 B국제학교, 강서구 C어학원 모두 유치원 설립인가를 받지 않고 ‘유치부 과정’이란 이름으로 월 100만 원이 넘는 거액을 받아가며 영어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미인가 위법 시설은 규모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부산의 한 지역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제보를 받지 않는 이상 위법 여부를 먼저 알아차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작 벌금? ‘폐쇄 명령’ 가능

위법 국제학교가 먼저 생겨난 서울의 경우 시교육청이 고발 조치를 하는 등 적극 대처하는 반면 부산은 최근 생겨나는 추세여서 허술한 관리망을 악용해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는 형국이다. 해운대구 B국제학교의 경우 ‘지역방송사와 함께한다’는 문구로 광고까지 하면서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고, 다른 미인가 시설들도 버스·TV·라디오·기사형 광고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영업을 벌이고 있다.

부산시교육청의 소극적인 대응도 위법 행위에 한몫하고 있다. A국제학교의 경우 ‘학교 명칭을 사용하거나 학교처럼 운영하려면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공문을 받고 나서도 6개월 넘도록 운영했고, 최근 입학설명회도 열었지만 시교육청의 추가 조치는 없었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교육당국 인가 없이 학교(분교)를 운영했을 경우 ‘폐쇄 명령’을 내릴 수 있고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실제 서울 강남구의 한 미인가 국제학교는 2018년부터 학생 100여 명을 모집해 운영하다 적발돼, 1·2심에 이어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도 벌금형(300만 원)을 받았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서울에선 강남지역 골목에서 몰래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부산은 대놓고 하는 상황”이라며 “이들 위법 시설을 없애려면 시교육청이나 교육부 차원에서 전수 조사를 하고 실질적인 폐쇄 조치까지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진·김성현 기자 djrh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