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비호감 대선의 시대정신은 ‘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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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희한한 선거다. 대권 주자는 바쁘지만 선거를 40여 일 앞두고도 대세는 형성되지 않고 있는 20대 대선 말이다. 후보의 호감보다는 비호감이 일찌감치 시대정신(?)이 된 ‘비호감 대선’, 정책과 비전보다는 누가 진짜 나쁜지 가리는 ‘네거티브 경쟁’, 엎치락뒤치락 도토리 키재기식 초접전 ‘안갯속 판세’. ‘역대급’이라는 말로도 모자라는 참 희한한 선거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설 연휴
단일화·TV 토론, 대선 변수 눈길
게임체인저는 역시 유권자
 
대권 쪼개 지역에 돌려주는 분권
개헌 로드맵 공약 통해 실현을
지방이 나서 한국 정치 개혁해야

말 많고 탈 많은 한국 정치의 고질이 이번 대선에서 대폭발했다. 곪고 문드러진 한국 정치의 내상이 얼마나 깊은지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 정도 후보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겨야 하나, 선거판을 뒤집고 다시 새판을 깔 수는 없나 별별 소리가 주위에서 난무한다. 그런데도 작금의 구도는 꿈쩍도 하지 않을 태세다. ‘거대 양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이재명·윤석열 후보만의 설 연휴 양자 TV 토론이 대표적이다. 안철수 심상정 후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다. 주권자인 국민은 ‘비호감’ 정치판이 깔아 놓은 장기판의 졸일 뿐인가.

설이 기다려지기는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이번 설 연휴가 이번 대선의 분수령으로 기대를 모으기에 그렇다. TV 토론, 단일화 등 선거판을 바꿀 굵직굵직한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다 가족과 친지가 만나 자연스레 민심이 모인다면 오리무중 대선의 안개도 차츰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설 연휴가 지나면 한 달여 앞으로 바짝 다가온 대선의 시계도 한층 뚜렷해질 터이다. 유권자나 정치권이나 이번 설은 말 그대로 단대목인 셈이다.

설이 기다려진다는 것은 정치인의 시간은 가고 유권자의 시간이 오고 있다는 말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인 주권자가 나설 차례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왕조 시대에도 ‘백성은 임금을 추대하기도 하고, 나라를 뒤엎기도 한다(民則戴君 民則覆國)’고 남명 조식은 말하지 않았던가. 대선은 물론이고 한국 정치의 판을 바꿀 게임체인저는 역시 유권자일 수밖에 없다.

20대 대선은 비호감의 한국 정치를 표로 심판하는 자리여야 한다. 비호감 정치에 언제까지나 끌려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주권자인 유권자가 심판이자 정치 개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정치권에 주문도 하고 압박도 가해야 한다. 단일화도 좋고, 거대 양당이 아닌 제3의 선택도 한 방법이다. 비호감의 정치가 계속하여 권력을 잡고 기승을 부리도록 방치하지 않겠다는 결심만 서면 길은 보이게 마련이다.

첫째는 ‘분권’의 길이어야 한다. 비호감 대선의 승자에게 대통령이 가진 대권을 몰아준다? 이 또한 비호감으로 다가올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더욱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지적되어 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권력만 좇는 정치꾼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권력의 원천이자 주인인 주권자라면 더는 이를 용납하기 힘들 터이다. 비호감 대선의 시대정신은 권력을 쪼개는 분권이어야 한다.

둘째는 ‘개헌’이다. 한국 정치의 혼란상을 부른 ‘87년 체제’, 즉 제6 공화국 헌법을 바꾸지 않는다면 분권도, 정치개혁도 가능하지 않다. 개헌을 통해 국가 체제의 판을 바꿔야 새 세상이 열린다. 마침 이재명 후보가 개헌에 시동을 걸고 나섰다. “권력이 분산된 4년 중임제가 필요하다”며 개헌 시 대통령 임기 단축 의사도 밝혔다. 안철수 심상정 후보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찬성한다. 개헌이 시대정신인 분권을 실현하도록 선거 이슈로 떠올라야 한다.

셋째는 ‘자치분권 개헌’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지방자치분권 공화국으로 개헌 논의가 진전돼야 한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으며, 어느 곳에 가더라도 차별받지 않고 잘살 권리가 있다. 수도권은 공룡이 되었고 지방은 소멸하는 지금의 지역차별은 대한민국을 뿌리째 흔드는 문제다. 대권을 쪼개 지역주민에게 돌려주어야 마땅하다.

20대 대선은 대한민국의 새판을 짜는 선거 축제다. 엉거주춤 미봉한 채 시간만 보낸다면 지방과 수도권이 공멸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지방이 소멸하면 수도권도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끝에 마침내 폭발할 것은 불문가지다. 대한민국의 미래로 가는 개헌이라는 새길이 필요하다. 3·9 대선이 자치분권 개헌의 출발점이 된다면 이번 대선에 따라붙는 비호감이라는 딱지를 마침내 떼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은 지방 사람이다. 선거판에서 뒷전으로 내몰리기 일쑤였던 지방이 비호감 대선을 호감 대선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서자. 지방도 살고 수도권도 같이 사는 길이 자치분권 개헌에 달려 있다. 지금은 지방 사람들이 이쪽이냐 저쪽이냐 무리를 지어 다니며 한국 정치의 고질을 방관할 때가 아니다. 지방의 선택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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