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시대 문화풍경] 우리 곁의 푸른 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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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강사

“하이팅크에 대한 유일한 험담이 있다면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자국의 예술가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외국에서 성공을 거두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 예술가를 높이 평가한다. 잔디는 늘 다른 곳에서 더 푸르게 자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뉴욕필하모닉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Jaap van Zweden)은 1979년부터 1995년까지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일했다. 당시 상임지휘자였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Bernard Haitink)에 대한 이 논평은 오늘, 부산의 현실에도 여전한 울림을 준다. 지역에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일이 서울이나 해외에서 크게 성공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대개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2022년은 작곡가 이상근(1922~2000)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다. 진주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무렵 부산에 정착한 이상근은 작곡가, 교육자, 문필가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박태준, 현제명으로부터 영남지역 작곡의 전통을 발견하고 부산, 대구, 울산지역을 중심으로 한 영남악파의 결성을 추동하기도 했다. 작곡가로서 이상근을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서양음악의 문법으로 풀어내고자 했던 데 있다. 1940년대 작곡한 <해곡>, <나의 사랑은>, <애모>는 양주동, 김억, 김소월과 같은 한국 근대시인의 시에 붙인 노래들이다. 해방 이후에는 지역문인의 시에 각별한 눈길을 주었다. 김춘수의 시에 붙인 노래들은 연가곡집 <가을저녁의 시>로 발간되었으며, 김세익 <석류>, 최계락 <시냇물>, 유치환 <보병과 더부러>, 김태홍 <분노의 물결>도 지역연고성이 뚜렷한 작품들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국악을 서양음악과 직접 결합하여 <조우> 시리즈를 작곡한다. “서양음악은 평균율에 근거하고 국악은 청각에 근거를 두고 있어 성격이 다른 두 음악을 융합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난제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일생 이를 꾸준히 실천했다.

2022년은 음악가 파가니니, 프랑크, 드뷔시, 본 윌리엄스, 스크랴빈이 탄생 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국내 여러 연주단체에서 기념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며 평론가들은 이들의 삶과 음악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상근의 자리는 많지 않다. 부산에서 관심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돌아볼 일이다. 이상근은 피란수도 부산에서 전시작곡가협회, 실험악회와 교류하면서 예술활동의 폭을 넓혔으며, 부산사범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미국 연수의 기회를 누렸다. 부산은 찬연한 예술혼을 꽃피웠던 음악적 대지였던 셈이다. 비단 예술가뿐이랴. 다른 곳의 잔디는 더 푸르다 찬양하면서 내 발에 닿는 잔디는 쉽게 짓밟지 않았던가. 아뿔싸! 이상근을 말하면서 저명한 해외 음악가를 화두로 삼느냐는 핀잔은 달게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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