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엔 윷놀이 대신 ‘난중일기’에 나오는 승경도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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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실내서 즐길 만한 설 전통놀이 ‘셋’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한국의 전통놀이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줄다리기,

오징어게임. 모두 바깥에서 신나게 몸으로 즐기던 놀이였다. 코로나 시대, 층간소음 걱정 없이 실내에서 할 만한 전통놀이는 없을까. 떠오르는 놀이가 윷놀이밖에 없는 이들에게 우리 조상님들이 즐겼던‘전통 보드게임’을 추천한다. 다가오는 설 연휴엔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놓고 가족들과 한판 놀아 보자.

승경도
벼슬 이름 적힌 종이에 윤목 굴려
나온 수에 따라 말을 이동
이순신 장군도 즐겼다는 놀이


1. 이순신 장군도 즐겼다는 ‘승경도’

“에이, 나 개성유수로 가게 됐어.” “그 자리 종3품이야, 바로 우찬성도 될 수 있는 좋은 자리라고.” “무과 출신이라 파직될 위험도 크잖아?” “어허, 나 청백리 받은 몸이라 파직은 물론 누가 상소를 올려도 거부할 수 있다네.”

사극 속 조선시대 관리들의 대화가 아니다. 벼슬살이 보드게임인 ‘승경도’(陞卿圖) 놀이판에서 오가는 대화다. 상소, 유배, 양사법, 자대제, 백의종군 등 어렵고 생소한 단어가 줄줄이 나오지만 놀이로 여겨서인지 아이들도 금세 외우고 이해한다.

승경도는 넓은 종이에 벼슬의 이름을 품계와 종별에 따라 써 놓고 ‘윤목’을 굴려서 나온 수(끗수)에 따라 말을 이동하는 놀이다. ‘승경도알’이라고도 불리는 윤목은 나무를 다섯 모로 깎아 1부터 5까지 끗수를 표시한 것이다. 주사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손에 쥐고 있다가 살짝 던지면서 굴리면 된다.

승경도는 승정도, 종경도, 종정도라고도 불린다. 종9품부터 정1품까지 다양한 벼슬을 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이 놀이를 통해 자식들에게 복잡한 관직 체계를 알기 쉽게 가르쳤다고 한다.

이 놀이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즐겼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종정도’ 이름으로 등장한다. 1594년 5월의 일기에, ‘15일(임진) 종일 비가 왔다, 아전을 시켜 종정도를 그렸다’, ‘21일(무술) 비, 웅천 현감과 소비포 권관이 와서 종정도 놀이를 했다’고 적혀 있다.

조선시대 벼슬자리는 등급이 많고 상호관계가 복잡해 만드는 사람마다 말판의 모양과 내용이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놀이 방법: 윤목을 굴려 나온 끗수를 비교해 신분을 정한다. 은일(학문이 높은 선비를 과거 시험 없이 발탁), 문과, 무과, 남행(조상의 공덕으로 맡은 벼슬), 군졸 순으로 신분이 정해지면 각자의 출발점에 말을 놓는다. 은일부터 윤목을 굴려 나온 칸으로 이동한다. 유명한 보드게임 ‘부루마블’이나 ‘인생게임’처럼 ‘돈 많은 자’가 승리하는 게임이 아니다. 가장 먼저 영예롭게 봉조하(게임에서는 퇴직을 뜻함)에 오르거나 마지막까지 관직에 남은 사람이 승리한다. ‘사약’을 받으면 더 이상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고 진다. 다른 사람의 승진을 막는 ‘상소’ 카드와, 파직·백의종군·상소를 거부할 수 있는 ‘청백리’ 카드가 있다. 이 외에도 인사권·암행어사 등 전략적으로 게임을 운영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아 흥미진진하다.

고누
바둑·장기와 비슷하나 더 쉬워
우물·호박 등 종류 다양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등장


2. 김홍도 풍속화에 등장한 ‘고누’

‘고누’는 바둑·장기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쉽고 단순하다. 말밭(그림판)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지만 오목을 둘 수 있는 수준이면 고누도 쉽게 즐길 수 있다. 말밭을 따로 사지 않고 종이에 직접 그려서 놀아도 된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말밭 모양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황해도 봉천군 원산리 10세기 초의 청자 가마터에서 나온 갑발(도자기를 구울 때 담는 큰 그릇)에 고누판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부터 즐긴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소년들이 고누를 즐기는 장면이 있다.

경상도에서는 꼰, 경기도에서는 고누·고니·꼬니, 전라도에서는 꼰·꼬누, 제주에서는 꼰짜라고 불렀다. 마주 앉아 말밭을 ‘꼬나보는’ 것에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고누의 종류는 다양하다. 우물고누·호박고누·밭고누·팔팔고누·곤질고누 등 대체로 말밭의 모양에 따라 이름이 지어졌다. 놀이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우물고누·호박고누처럼 상대방의 말을 움직이지 못하게 가둬서 이기는 것과, 줄고누·참고누·팔팔고누처럼 상대방의 말을 다 따내면 이기는 것이다.

☞호박고누 놀이 방법: 각자의 집에 말을 3개씩 올려놓는다. 먼저 시작하는 사람부터 한번에 한 칸씩 움직인다. 원 안에서는 선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자신의 집에서 나온 말은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자신의 집에서는 왔다갔다 하지 못한다. 상대방 집에도 들어갈 수 없다. 서로 번갈아 가며 움직이다가 상대방의 말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가두는 쪽이 승리한다.

☞팔팔고누 놀이 방법: 자기 앞쪽 끝줄에 말을 8개씩 올려놓는다. 먼저 시작하는 사람부터 가로나 세로를 따라 말을 움직인다. 가로막는 말이 없다면 가로나 세로 한 방향으로 한번에 몇 칸이든 이동할 수 있다. 두 개의 말로 상대방의 말을 가로나 세로로 둘러싸면 잡을 수 있다. 모퉁이일 경우 양쪽으로 막으면 잡는다. 상대방 말이 하나만 남게 되면 승리한다.

쌍륙
주사위 두 개 던져서 하는 놀이
초등학생도 쉽게 할 수 있어
신윤복 그림·조선왕조실록에 나와


3. 의산군 남휘가 푹 빠졌던 ‘쌍륙’

주사위 두 개를 한번에 굴린다. 두 주사위에서 같은 수가 나오면 한편에선 환호가, 한편에선 탄식이 나온다. ‘운’과 ‘전략’ 둘 다 필요하다. 주사위에서 좋은 숫자가 나와야 하고 상대방 말을 잡거나 내 말이 빨리 반대편에 들어가도록 머리를 써야 한다. 고누보다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초등학생도 한두 번 해 보면 곧잘 이해한다.

‘쌍륙’(雙六)은 두 사람 또는 두 편으로 나뉘어 겨루는 놀이다. 주사위 두 개를 굴려 나오는 수에 따라 놀이판에 놓인 말을 이동시킨다. 주사위 두 개가 모두 6이 나오는 것을 일컬어 쌍륙이라 했고, 길게 다듬은 나무나 뼈로 된 말을 쥐고 논다고 해 ‘악삭’이라고도 불렀다.

“지난날 동생의 병세를 살피기 위해 사람을 보내어 문병하게 하였는데 남편이란 자는 부인의 병 증세가 어떠한지도 모르고 내시를 데리고 ‘쌍륙’만 쳤으니 가장 된 도리가 없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24년 세종은 21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은 누이 동생인 정선공주의 남편 의산군 남휘를 궐 안으로 불러 이렇게 꾸짖었다고 한다.

신윤복의 그림에서도 쌍륙을 볼 수 있다. ‘쌍륙삼매’는 기녀와 마주 앉아 쌍륙을 하는 사내가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쌍륙은 다양한 계층이 즐겼던 놀이였다. 참쌍륙, 여기쌍륙, 용호쌍륙 등 종류가 다양하다.

☞참쌍륙 놀이 방법: 각각 15개씩의 말을 규칙대로 배치한다. 주사위를 던져 높은 수가 나온 사람이 먼저 시작한다. 주사위 두 개를 굴려 나온 수만큼 말을 이동한다. 모든 말이 반대편에 도달하면 말을 밖으로 뺀다. 먼저 말을 다 빼는 쪽이 이긴다. 잡힌 말은 출밤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쌍륙은 놀이 방법이 아주 다양하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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