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운업계 관행·현실 외면한 공정위 ‘탁상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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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동남아 항로를 오가는 23개 컨테이너 정기선사(12개 국적 선사, 11개 외국적 선사)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18일 시정명령과 함께 총 9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2003년 12월부터 15년 동안 한국~동남아 수출입 항로에서 120차례 운임을 담합했다는 게 그 이유다. 공정위가 당초 책정한 최대 과징금 약 8000억 원에선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불법 담합’이라고 보는 시각은 변함없다. 해운업계는 해운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결정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바로잡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같은 정부 부처인 해양수산부도 “공동행위가 해운법상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유감을 표했다.

‘해상운임 담합’ 공정위 과징금 후폭풍
해운법 개정으로 불필요한 공방 끝내야

같은 사안을 두고 이처럼 의견이 엇갈리는 데는 해운법에 명시된 공동행위 규정이 모호한 탓이다. 우리 해운법 제29조는 운임, 선박 배치, 화물 적재 등 운송 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계 해상운송 시장에서는 글로벌 대형 선사들이 가격 경쟁을 통해 중소 선사를 도산시킨 뒤 운임을 대폭 올리는 방식으로 화주와 소비자들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 늘어나자 1974년 유엔(UN) ‘정기선 헌장’을 통해 해운업계의 담합을 인정했다. 우리나라도 1978년 해운법을 개정해 해운사 담합을 인정해 왔다. 미국 해운법과 일본 해상운송법은 공정거래와 관련한 법률 적용을 배제한다는 문구를 명시하고 있다.

기업 간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한다는 공정위 설립 목적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해운업 특성과 현실을 무시한 채 원칙을 내세운 공정거래법의 잣대로만 이번 사안을 다룬 점은 아쉽다. 더욱이 부처 간 이견 조정도 끝나기 전에 기업 제재부터 하겠다는 것도 맞는지 의문이다. 누가 뭐래도 해운업은 국가 기간산업이고,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에선 국가 차원 육성이 필요한 법이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도 전면 배치된다. 비근한 예로 2016년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를 밟을 때도 정기 컨테이너선사라는 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가 대규모 물류 대란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던가.

공동행위 폐지가 능사는 아니다. 유럽에서의 운임 공동행위 폐지는 과점화로 나타났다. 운임 공동행위를 막으면 치킨게임이 가능한 글로벌 1~3위 선사를 가진 유럽연합(EU) 등에 휘말려 우리 선사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운임, 노선 조정, 예비 선박 확보 등에 대한 공동행위를 허용하면서 각국 정부 혹은 국제기구가 지도 감독하는 체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당장 해운업계는 동남아 노선뿐 아니라 한국~일본, 한국~중국 노선에 대한 공정위 조사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기선 시장의 불안정을 하루빨리 해소하고 불필요한 공방을 끝낼 수 있도록 국회에 계류 중인 ‘해운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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