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통령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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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익 지역사회부장

큰일이 났다. 우리 사회에 ‘대통령’이 사라지고 있다. 우선 아래 조사 결과부터 보자.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2021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 조사’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2007년부터 매년 전국 1200개 학교 학생 2만 3000명과 학부모 1만 5000명에 교원 2800명까지 두루 조사하는 것이어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바로미터가 된다.

초등학생 희망직업을 자세히 살폈다. 2012년 이후 부동의 1위는 운동선수. 2020년부터 대세 ‘크리에이터’가 4위를 차지했다. 의사, 교사, 공무원, 경찰관(수사관) 등 안정 추구형 직업도 다수 등장한다.

초등생 꿈 대통령? 아이들까지 ‘현실주의’
고단한 청년 본 고교생, 희망직업은 ‘군인’
덜 나쁜 대통령은 나, 역대급 ‘비호감’ 대선
아이부터 어른까지 ‘대통령 실종’에 카오스

이 엄혹한 시대에, 포부도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대통령’이라 말하는 과거의 순수하고 맑은 초등학생을 기대한 건 아니다. 그래도 희망을 마음껏 키워 나가야 할 미래의 꿈나무라 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이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꼽은 부동의 1위는 ‘교사’다. 고등학생의 희망 직업 중에서는 코딩 프로그래머나 가상현실·인공지능(AI)전문가 등을 포함하는 ‘컴퓨터공학자·소프트웨어개발자’가 2020년 7위에서 지난해 4위로 껑충 뛰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군인’이다. 지난해 고교생 희망직업 상위권에 교사와 간호사에 이어 군인이 3위에 올랐다. 2012년 15위였던 군인이 2019년 5위, 2020년 4위에 이어 지난해 한 계단 더 상승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복합적일 테지만, 생고생 끝에 대학에 진학해도 바늘구멍도 모자라 ‘나노구멍’이 되어 가는 취업난 등등 팍팍하기 그지없는 청년의 삶을 아이들 역시 목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 공무원과 함께 세상 풍파에 휘둘리지 않는 안정적인 직업인 군인은 그렇게 떠올랐다.

하지만 반전은 다른 곳에 있다. 사실상 아이들의 희망직업 1위는 ‘없다’ 내지는 ‘모르겠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학생 응답자의 36.8%, 고등학생의 23.7%가 희망 직업이 없다고 답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기 때문’(중학생 50.2%, 고등학생 49.5%)이라거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몰라서’(중학생 24.4%, 고등학생 18.5%), 그 다음이 ‘관심 진로 분야를 좁히는 것이 힘들어서’(중학생 11.5%, 고등학생 17.2%)였다.

특히 적신호가 켜진 것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희망직업이 없다고 답한 초등·중학생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2019년 초등학생의 12.8%였던 것이 2020년 20.1%, 2021년 20.9%로 증가했다. 중학생은 2019년 28.1%에서 2020년 33.3%, 2021년 36.8%가 됐다. 고등학생도 2019년 20.5%에 비해 2020·2021년에 3%포인트 가량 늘었다.

아이들 희망직업에서 ‘대통령’이 사라진 것처럼, 학벌 중심 경쟁 사회 등 부조리가 더 극단화하면 지쳐 꿈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더욱 늘까 봐 걱정이다.

이런 ‘대통령 실종’ 사태는 아이들의 꿈을 벗어나 현실에서도 똬리를 틀었다. “내가 덜 나쁜 대통령이니 지지해달라”고 외치는,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희한한 대선이 지금 한창이다. ‘찍고 싶은 대통령’이 사라졌다고 한탄하는 이들도 계속 늘고 있다. 정책과 공약은 뒷전이 된 지 오래다.

말의 힘은 시대를 지배한다. 오는 3월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말을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누님·동생, 욕설 녹취록, 조폭, 가족 리스크, 혐오, 특검, 자살 따위의 말들이 지배하는, 폭로로 얼룩진 비정상 대한민국이다.

갑자기 동해선을 타고 부산에서 울산으로 간다고, 살기에도 벅찬 청년들 모아 보여주기 행사를 한다고, 안 하던 앞치마 두르고 요리한다고 사라진 ‘대통령’이 돌아올지 의문이다.

이런 사태를 방치한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부산·울산·경남 시도민들은 실망감을 숨기지 않는다. 국가균형발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그는 공공기관 이전 등 핵심 공약 이행에 소극적이었고,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데도 선거가 다가오자 여권은 기시감 가득한 공약들을 재방송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대선이 이제 50일도 남지 않았다. 5년 만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그날, 슬프게도 우리는 누가 덜 나쁜 후보인가 마지막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대선 결과는 곧장 이어질 지방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허투루 결정할 일이 아니다. ‘부울경 메가시티’ 역시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에 성공 여부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대미문의 카오스 시대를 겪고 있는 유권자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보는 시간이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필요하다. r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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